[기획] 총선 다가오자 연금개혁 `핑퐁게임`

김미경 2023. 10. 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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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특위 결론없이 정부에 미뤄
정부, 맹탕안 국회로 다시 떠넘겨
여야, 합의안 도출 가능성 낮아
"정부가 결단 내려야 개혁 가능"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국민연금 개혁이 표류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1년 넘게 논의한 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난 2월 정부에 공을 넘겼지만 바통을 받은 정부도 결국 핵심 내용이 빠진 '맹탕안'을 확정해 국회로 떠넘겼다. 정부와 국회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서로에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금개혁은 포퓰리즘으로 접근해서는 불가능하며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는 지금까지 충실하게 준비한 방대한 데이터를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다"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전체 연금제도 구조 개혁 논의를 위한 풍부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연금개혁의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연금개혁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정부안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내놓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은 5차 재정계산위원회가 산정한 '18개 재정안정 시나리오'를 기초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국민연금 모수개혁을 추진한다는 방향만 제시했을 뿐 국민들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더 내고, 얼마나 덜 받게 되는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핵심인 보험요율과 소득대체율 등이 빠지는 등 명확한 방향성이 없다. '인기를 얻지 못한다 해도 완수하겠다'던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퇴색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 맹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간다. 윤 대통령은 "연금개혁은 법률 개정으로 완성되는 만큼, 정부는 국회의 개혁방안 마련 과정과 공론화 추진 과정에도 적극 참여하고 지원할 것"이라며 "저는 지난 대선 시 제가 대통령이 되면 과거 정부들과 달리 연금개혁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행정부가 과학적 근거와 국민 의견조사, 선택 방안의 제시 등을 철저히 준비하고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드린 바 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총선을 1년 넘게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이루지 못한 합의다. 결국 연금개혁은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넘어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지도자의 결단이 없인 불가능하다는 게 개혁을 이룬 선진국의 교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올 3월 개혁안을 관철했다. 일본과 영국은 각각 4년과 12년만에 개혁안을 완수했지만 우리는 17년 동안 포퓰리즘에 헛바퀴를 돌고 있다.

연금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의 적기를 놓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등 과거 정부에 대해 '연금개혁 의지 없이 갈등만 초래했다'고 비판했으나 현 정부 역시 연금개혁 시늉만 하다 끝난 전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연금개혁을 하려면 구조개혁과 모수개혁이라는 큰 그림을 가지고 개혁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데,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계획안은 내용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내놓은 방식에서도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며 "연금개혁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서 해야하는, 그만큼 중요한 사안임에도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국회에 넘긴 것과 같다. 분명한 정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은 비겁하다고 할 만 하다"고 직격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어렵더라도 연금 보험료율을 12%로 올려야 한다는 말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 말도 못했다"며 "우리나라는 이미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는데 지금이라도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똑바로 인지해야 한다.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자동안정화장치 등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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