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모두 날린 현실 안 믿겨"… 전세사기 피해자의 울분
저금리 대출도 빚… 주거 공간 보장 지원 절실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전세 사기 뉴스가 터지니 슬슬 관심이 덜해지더라. 그렇게 무관심해지니 내가 피해자가 됐다"
대전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30대 황지우(가명) 씨는 "일주일에 3-4번씩 병원 당직을 서며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잠만 자고 다시 출근했던, 저의 20대를 바쳐 모은 돈"이라며 "안 먹고 안 쓰며 구질구질할 정도로 모은 돈인데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 씨는 힘들게 모은 돈에다 지난 3월 버팀목전세대출까지 받아 서구 갈마동의 한 빌라에 보증금 1억 5000만 원으로 2년 전세계약을 했다. 기쁨도 잠시, 전셋집에서 지내던 황 씨는 건물의 임대인이 대전에서 터진 대규모 전세 사기로 구속된 김모 씨라는 소식을 접했다.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황 씨를 비롯, 입주민들 모두는 지난 3월 이후에 김 씨와 전세 계약을 맺었다. 그만큼 계약 기간이 한참 남았다. 그러나 입주민들이 뒤늦게 김 씨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을 알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사이 법원에서 임의경매 안내문을 붙이고 갔다.
문제는 전세금. 건물에 12억 원의 근저당이 잡혀 있어 건물이 팔린다 해도 근저당권자인 새마을금고가 우선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최우선변제권도 8500만 원 이하여서 변제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황 씨에게 돌아갈 전세금은 없는 셈이다.
은행의 구멍 뚫린 허점에 전재산을 일순간에 날리게 된 현실이 황 씨는 기막힐 뿐이다.
황 씨는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가 만연해 대출 심사가 까다롭다며 20개가 넘는 물건지를 승인 거절한 후 최종적으로 통과시켜 준 건물이 전세 사기일 줄은 몰랐다"며 "부동산이 제공한 등기부등본을 제출했을 뿐, 모든 심사는 은행이 승인했는데 왜 모든 피해의 책임은 혼자 져야 하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최우선변제권의 임차인 보증금 범위 제한으로 조건에 해당하는 극소수만 변제해 주는 허점을 개선해야 한다"며 "저금리 대출은 또 다른 빚을 지게 할 뿐,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 피해자들의 주거 공간을 보장하는 등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 정모(31) 씨도 전세사기 피해자다.
정 씨는 지난해 8월 조 씨 소유인 유성구 문지동의 한 빌라에 입주했다. 약 10평(33.1㎡) 크기 원룸에 보증금 1억 1000만 원 중 9900만 원은 카카오뱅크 청년전세자금으로 마련했다.
그러나 정 씨는 올 2월 건물 하자 문제로 집주인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세 사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 때라 느낌이 이상했다. 정 씨가 부동산 중개인에게 '임대인이 전화를 받지 않는데 혹시 전세 사기를 당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중개인은 '절대 아니다'고 답했다.
그는 "부동산 중개인은 선순위보증금에 대한 내용 고지 없이 임대인의 남편이 유명기업의 연구원이며 보유한 건물이 많다는 등 임대인이 믿을 만한 사람임을 수 없이 강조했다"며 "저는 결국 빚만 1억 원이 생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개인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지만 같은 해 6월 건물관리업체로부터 임대인의 건물 여러 채가 경매에 넘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뒤늦게 7월 말 유성경찰서에 형사고소 서류를 제출했으나 지난 8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현재 정 씨는 피해자 신청 준비를 하고 있다.
정 씨는 "사람들은 '왜 내 세금으로 보장해 줘야하냐'고 피해자 탓을 한다"며 "무작정 돈을 달라고 떼 쓰는 게 아니다. 임대인 1명의 죄로 끝내는 게 아니라, 부동산 중개인 등 연루된 모든 사기꾼을 같이 조사하고 재발을 방지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세사기 피해자는 기존 대전시민보다 새로 이주해 온 젊은 청년들이 많다. 그러나 안전한 다가구주택도 부족하고 사기당한 청년에 대해 관심도 없다"며 "자본금이 적은 임대인에게 과한 대출을 내주고, 대출을 갚지 못할 것 같으니 바로 경매에 넘겨 채권최고액을 받아 돈을 버는 은행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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