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숫자 없는’ 개혁은 허구이고 책임 방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의결하면서 “‘숫자가 없는 맹탕’이라거나 ‘선거를 앞둔 몸 사리기’라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지만 근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 낼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연금개혁의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구체적 숫자와 방향이 없는 정부 연금개혁안을 국회로 넘기면서 내놓은 자기 합리화와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추세라면 국민연금은 2055년에 완전히 고갈돼 1990년생이 연금을 받을 때가 되면 한 푼도 남지 않는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고, 개혁의 불가피성·시급성과 방향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서 있다. 그렇다면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지 구체화한 목표치를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정부가 먼저 구체안을 내놔야 논의의 물꼬가 트이고 속도가 붙을 것이 아닌가. 그걸 안 했으니 무책임하다고 탓하는 건데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이 “과거 정부는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 없이 4개 대안을 제출해 갈등만 초래했다”며 전 정부를 걸고넘어진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안이 ‘사지선다’라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윤 정부는 그 여섯 배인 24가지 시나리오를 압축도 하지 않은 채 국회에 던지듯 공개했다. 그러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국회에 제시했다고 자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정부의 ‘맹탕’ 연금개혁안을 접한 국민들은 정부가 연금개혁을 조기에 할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권 초기에 초당적인 국민 합의를 만들겠다던 윤 정부가 임기 1년7개월이 되도록 숫자조차 내놓지 못하니 그리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놓고도 대폭적인 증원을 예고했다가 의사들의 반발이 커지자 증원 규모는 밝히지 않는 쪽으로 후퇴했다.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연금도, 의대 증원도 정부가 구체적 숫자를 내놓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작지 않다.
‘숫자 없는 개혁’이 윤 정부 스타일로 고착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꼭 해내겠다는 메시지는 강하지만 늘 핵심이 빠져 있다. 반대로, 노동시간제 개편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 69시간 노동’을 내놨다가 반발이 커지자 표류 중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가 해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숫자 없는 개혁은 허구이고 책임 방기임을 무겁게 새겨야 한다.
‘숫자 없는 개혁’이 윤 정부 스타일로 고착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꼭 해내겠다는 메시지는 강하지만 늘 핵심이 빠져 있다. 반대로, 노동시간제 개편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 69시간 노동’을 내놨다가 반발이 커지자 표류 중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가 해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숫자 없는 개혁은 허구이고 책임 방기임을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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