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만 넘쳐나는 소통 부재의 사회···연극 '러브 앤 인포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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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그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한다.
영국 출신 극작가 카릴 처칠이 2012년 발표한 원작을 가져와 현대 사회에 표류하는 수많은 정보들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극 중에는 오감(五感)을 통해 정보를 제대로 받고 있지만, 눈 앞의 인물이 사랑하는 아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대화 중 쏟아지는 신랄하지만 유쾌한 대사는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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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순간에 집착하는 세태 비판
5명 배우가 100여명 인물 연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그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한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거절하지만, 다른 여자는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내 여자가 귓속으로 자신의 비밀을 속삭인다. 비밀을 들은 여자는 경악에 빠진다. 갑작스럽게 장면이 끝난다. 전혀 다른 시간과 배경을 두고 무대에 배우들이 서있다. 이렇게 76개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바뀐다. 현대 사회를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대화들은 갑작스러운 잔상을 남긴다.
지난 17일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몬순’의 진해정 연출이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올해 진해정 연출은 공연 예술 분야의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DAC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영국 출신 극작가 카릴 처칠이 2012년 발표한 원작을 가져와 현대 사회에 표류하는 수많은 정보들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작품은 7개의 섹션 안에 76개의 짧은 장면(마이크로드라마)들로 구성돼 있다. 배우 권은혜·권정훈·성수연·이주협·황은후 5명이 아이부터 노인까지 100여 명에 달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동일한 청색의 의상을 입은 배우들은 장면마다 성별도 성격도 자유자재로 바꾼다.
10년 전 초연을 올린 작품이지만 때가 지난 인상은 주지 않는다. 틱톡 등 숏폼 콘텐츠를 연상시키는 짧은 장면들은 순간에만 집중하는 현 사회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무대 위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제시되는 기호들은 우리 삶 속 일상적인 순간들을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광적으로 열광하는 10대 팬들, 잠이 오지 않아 페이스북을 보는 남자, 둘러앉아 예전 결혼식 비디오를 시청하는 가족, 헤어졌지만 서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까지. 장면마다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며 무대 위 인물을 통해 발화되지만, 인물들은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소통은 번번이 어긋난다.
“우리도 정보잖아, 우리 유전자.” 유전자와 뇌의 전달 신호까지, 극은 모든 것이 정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보가 있다고 감정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극 중에는 오감(五感)을 통해 정보를 제대로 받고 있지만, 눈 앞의 인물이 사랑하는 아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76개의 대화는 정보의 교환에 그친다. 장면을 전환하면서 이따금 양쪽 벽면에 글자들이 입력되는 형태의 장면이 연출된다. 완결되지 못한 채 타이핑되는 문장들을 통해 장면 속에서 미처 꺼내들지 못했던 소통의 순간들이 점멸한다.
작품은 큰 틀의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관객들은 끝나는 순간까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때로는 철학적으로 이어지는 대화들은 난해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시종일관 진지한 연극만은 아니다. 대화 중 쏟아지는 신랄하지만 유쾌한 대사는 웃음을 자아낸다. 다음달 4일까지. 90분.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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