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누구를 위한 `대덕특구 50주년`인가

이준기 2023. 10. 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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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이럴 거면 뭣하러 이런 행사를 준비했는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요.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요."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덕특구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대덕특구 연구기관들의 불만과 푸념이 아직도 귓가에서 가시지 않는다.

이들은 대덕특구 5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나흘간 행사에 직접 참여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줬다. 자신들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행사임에도 그렇지 못했던 대덕특구 50주년 행사에 애써 서운한 마음을 감춰 보려 했지만, 그게 마음 같이 되지 않았는지 아쉽고 섭섭한 심정을 토로했다.

대덕특구는 1973년 '연구학원도시 건설기본계획' 수립을 계기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대덕특구 50주년 기념행사는 올해 초, 첫 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대덕특구 50주년 관련 행사 준비를 위한 예산으로 20억원을 요구했지만, 예산 당국의 칼질에 3억원으로 대폭 감액됐다.

이러다간 행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정부보다는 국회가 먼저 나서 예산 심의과정에서 2억원을 늘려 5억원으로 최종 편성됐다. 10년 전인 2013년에 개최됐던 '대덕특구 40주년 기념 행사' 전체 예산이 2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5억원은 말도 안 되는 예산이었다.

부족한 예산은 행사 주관기관인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자체 사업 예산과 유관기관, 대전시 등의 협조를 받아 충당하는 걸로 해서 준비에 들어갔다. 행사 준비 과정에서 대덕특구를 소관하는 중앙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덕특구의 지역적 기반인 대전시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제각각 자신들의 행사 준비에만 신경쓸 뿐, 대덕특구 5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한 소통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외면(?) 속에서도 반 세기 동안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 성장에 기여했다는 자긍심에 특구 산학연 혁신주체들이 서로 나서 행사 준비를 꿋꿋하게 이어갔다. 대덕특구 5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기술패권 경쟁 시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국가 차원에서 알리고, 미래 50년을 향한 대덕특구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대통령 초청 국가 행사로 키우기에 나섰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덕특구 50주년 기념식'이라는 행사명으로 날짜도 당초 11월에서 10월 19일로 앞당겨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정부 R&D 예산 삭감'이라는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나 대덕특구 50주년 기념식은 추동력을 잃어갔다. 그로 인해 대덕특구 50주년 기념식은 11월로 연기됐다. '기념식' 명칭은 은근슬쩍 사라진 채 '대덕특구 50주년 행사'라는 타이틀로 행사명이 바뀌었고, 부대 행사로 계획했던 '기술사업화 박람회 및 우수성과 전시회'가 메인 행사로 둔갑된 채 진행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성과 전시회에 참가한 9개 연구기관들은 갑작스런 행사 변경에 할 말을 잊었다. 당초 VIP 초청 행사라고 해서 기관마다 없는 예산을 끌어 모아 최소 5000만원 이상의 큰 돈을 들여 그럴싸하게 전시 부스를 마련했지만,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과 과기정통부 장관, 그리고 대전시장 등이 찾지 않아 헛물만 켠 꼴이 됐다.

이 와중에 9개 연구기관 중 4개 기관은 다음달 초 '대덕특구 50주년 기념식'에 다시 전시 부스를 준비하라는 과기정통부의 지시를 받아 황당함을 더했다. 가뜩이나 경상비가 메마른 가운데 또다시 전시부스 제작에 5000만원 이상의 돈을 들여야 할 판이 됐다. R&D 예산은 깎고 R&D 카르텔로 지목하며 과학자들의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낸 정부가 생색내기 위한 행사에는 단 한 푼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에서 '대덕특구 50주년 기념식'은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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