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정문화재가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은 이제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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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가 지난 2월부터 추진한 근현대건축자산에 대한 전수조사가 12월 마무리될 전망이다.
약 1년여간 진행된 이번 사업은 대전시 내 50년 이상 된 2만6000여 건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다.
대전시는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해당 건축물에 대한 목록화 및 문화재 등록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 의미와 건축사적 중요성을 부각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 내 비지정 근대건축물 중 지역성과 희소성 있는 근대건축물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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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간 진행해 12월 마무리
주목받지 못한 문화자산 양지로
목록화에 적극 활용까지 계획중
비지정(미등록) 문화재: 문화재보호법 또는 시·도 조례에 따라 지정(등록)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
대전시가 지난 2월부터 추진한 근현대건축자산에 대한 전수조사가 12월 마무리될 전망이다. 약 1년여간 진행된 이번 사업은 대전시 내 50년 이상 된 2만6000여 건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 건축물은 덜 알려져서 관심받지 못한 비지정(미등록) 문화재가 대부분이나 대전시는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목록화 작업은 물론 문화재 지정 가능 여부까지 타진할 예정이다. 대전시 근대문화유산은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2010년 보고서로 작성된 바 있으나 그 중 많은 건축물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등록문화재라 하더라도 건물주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임의로 처분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경우를 비춰보면, 비지정, 비등록 문화재에 대한 보호 장치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전시는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해당 건축물에 대한 목록화 및 문화재 등록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 의미와 건축사적 중요성을 부각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목원대 교수)은 "시에서 진행하는 근현대건축자산 작업이 마무리되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건축자산이 발굴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대전시 내 비지정 근대건축물 중 지역성과 희소성 있는 근대건축물을 살펴보았다.
마달령 터널(동구 신상동)
마달령 터널은 대전의 근현대사를 온전히 간직한 몇 안되는 건축물 중 하나다. 세천에서 옥천 사이에 있는 이 터널은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시 만들어졌고 1919년까지 사용됐다. 길이는 약 360m 정도이며 단선 철도가 놓여있는데, 철로 선형 개량 작업 중 곡선의 철로를 직선화하는 과정에서 폐쇄됐다. 암석을 깨서 그 가운데 설치했기 때문에 암석이 터널 축대벽 역할을 해주고 있다. 말굽아치 형태로 아치 하부는 돌구조, 아치 위와 전면 벽체는 벽돌로 마감돼 있다. 터널 북쪽 입구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황을 알 수 있는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세천수원지(동구 세천동)
1934년 준공된 대전 최초의 상수도 사업 시설. 1950년대 또 다른 상수도원이 개발될 때까지 대전시 상수도 공급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세천수원지가 건립되면서 대전 내 일본인 집단 거주지역에 상수도가 가설됐고 대전은 본격적인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후 인구 증가에 따른 상수도 수요 증가로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됐고, 기능을 다 한 세천수원지는 문을 닫은 채 주변 산림과 함께 생태보존림이 조성됐다. 남아 있는 취수문 등을 통해 초기 상수도 시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정동장로교회(동구 정동)
뾰족한 창문과 계단탑 등 수직성을 강조하는 고딕 양식의 요소를 갖춘 교회 건축물로 1966년 건립됐다. 철근콘크리트구조에 함석지붕을 갖췄고 건립 당시의 원형을 거의 잘 간직하고 있다. 1층 출입문 위에는 2, 3층에 걸쳐 거대한 반원형 창문이 설치돼 있어 내부에 개방감을 주고 있다. 붉은벽돌로 마감된 외벽과 돌림띠로 둘린 처마는 이 건물의 장식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1992년까지 교회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림장(서구 정림동)
정림장은 원래 1954년 충남 부여군 임천면에 세워진 건물이었는데, 한학자이자 서예가인 정향 조병호 선생이 이를 사들여 이축했다. 첫 이전지는 계룡시 두마면이고 이후 단군 사당과 함께 대전 서구 정림동으로 이전했다. 정남향 배치의 정면 6칸반, 측면 2칸반의 '一'자 형 평면 구조이며 내부 칸막이가 4중 문으로 돼 있는 점이 색다르다. 지붕은 팔작형태이며 사용된 목재는 일제 강점기 부여 신궁을 짓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온 삼나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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