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중진 험지 출마론’에 뒤숭숭한 국민의힘···TK 의원들 “사과하라”

정대연·이두리 기자 2023. 10. 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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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사진 오른쪽) 등 의원들이 30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띄운 ‘영남권 중진 수도권 험지 출마론’을 두고 국민의힘에선 자신들이 처한 위치에 따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대구·경북(TK) 일부 의원들은 30일 인 위원장에게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는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험지 출마론’ 대상자인 김기현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여당 수도권 인사들은 당의 혁신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반응과, 수도권 위기론을 극복할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갈렸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초선인 김용판 의원(대구 달서병)은 “인 위원장은 ‘낙동강 하류 세력’ 운운한 데 대해 대구시·경북도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번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최고 높은 데가 TK 아니냐”며 “그런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뒷전’ 얘기하는 것은 마치 잡아놓은 고기 취급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기각,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에 이은 인 위원장 발언으로 “대구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면서 “해당행위에 가까운 언동”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에 이어 재선인 류성걸 의원(대구 동구갑)도 의총에서 인 위원장의 해당 발언을 비판했다고 한다. 류 의원은 인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 상당수가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 대해 “혁신위원들부터 거취를 정하라”고 말했다.

이런 반발은 대통령실·검사 출신 인사들이 대거 총선에 출마할 것이란 얘기로 영남권 의원들의 ‘물갈이’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나왔다. 인 위원장의 ‘낙동강 하류 세력 뒷전’ 발언은 불안감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부산·울산·경남(PK) 5선인 조경태 의원은 “수도권만 험지라는 인식은 안 맞는 것 같다”며 “영남 지역, 특히 PK 지역에도 험지가 있다”고 말했다. TK 지역 한 초선의원은 “영남 지역 의원 중 수도권 경쟁력이 있는 분은 극소수”라며 영남 의원들의 일률적인 수도권 배치 전략은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미국) 콜로라도 주의원을 워싱턴DC에 갖다 놓으면 선거가 되느냐”고 했다.

앞서 인 위원장은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전국적 인지도가 있는 영남권 의원들의 수도권 출마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 대상으로 울산에서 4선을 한 김 대표, 대구 5선인 주호영 의원 등을 언급했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험지 출마론’과 관련해 “혁신위에서 아직 제안을 해온 바가 없다”며 “정식으로 제안해 오면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3선인 윤재옥 원내대표도 “지금은 혁신위가 중지를 모으는 과정”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 자체가 새로운 논란이 될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논란이 확산하자 인 위원장은 이날 “영남, 경상남·북도의 훌륭한 의원들이 경쟁력이 있으면 서울에 와서 도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이름을 거명한 것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 많은 경우 국민이 희생했고 정치인이 덕을 봤다”며 “이제 문화를 바꿔서 정치인이 희생하고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그런 사상 전환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신환 혁신위원(국민의힘 서울 광진을 당협위원장)은 “기득권의 희생 없이 이뤄지는 혁신은 없다”며 “우리 당의 다선·영남권 의원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 이미지 때문에 (인 위원장이) 상징적으로 말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총선 수도권 출마를 준비하는 여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영남 의원들 반발에 대해 “당은 죽어도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라는 비판이 나왔다. 수도권 한 초선의원은 TK 의원들의 의총 발언에 대해 “너무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처럼 보였다”며 “의원들에게 별로 공감을 못 얻었다”고 말했다. 김용남 국민의힘 전 경기 수원병 당협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하태경 의원 주최로 열린 ‘수도권 민심, 국민의힘 원외 위원장한테 듣는다’ 간담회에서 “수도 서울을 험지로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영남당 한계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희생할 사람은 솔선수범해서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에서 3선을 한 하 의원은 지난 7일 수도권 출마를 선언하며 영남권 중진 험지 출마론에 불을 붙인 장본인이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인 위원장이 굉장히 시의적절하게 메시지를 던졌다”며 “‘이 당이 변하려는 의지가 있구나’라는 변화의 방향성을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취지 자체는 성공”이라고 말했다.

반면 영남 중진 험지 출마가 수도권 총선 위기론 극복의 근본 대안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홍범도 (장관 흉상 이전) 논란과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당시 외압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박정훈 대령에 대한 처우, 경제상황 등에 빡친(화가 난) 유권자가 주호영·김기현 의원의 수도권 출마로 마음이 풀릴 가능성은 없다”며 “오히려 그 자리(영남 중진 지역구)에 낙하산 꽂아서 ‘아무말 리스크’가 생길 확률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구상찬 국민의힘 서울 강서갑 당협위원장은 앞선 간담회에서 “영남에서 끌려와서 할 수 없이 수도권 출마하면 표를 주느냐”며 “스스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수도권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출마 준비자들 사이에서는 영남 중진들의 수도권 차출이 수도권 당협위원장 물갈이가 목적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규택 경기 수원을 당협위원장은 “영남에서 정치적 세대교체를 해야 하는 것이지, 수도권으로 옮기는 것은 본질적으로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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