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반출' 규정위반인데 …"항우연 80%가 이렇게 일해" 황당진술
잠금장치 떼어내도 제재 없어
항우연측 "대전-나로호센터
클라우드로 자료 공유한다"
출연연 年 400명 이직하는데
기술탈취 방지할 장치 전무
유출자 80%가 전현직 '내부자'
◆ K기술 유출 확산 ◆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해 긴급 감사를 벌인 결과 항우연의 내부 기술정보 관리가 심각하게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정보가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아무런 제재 없이 외부 반출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자료 열람도 제한 없이 이루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연구원의 기술 개발 정보를 통째로 빼낼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30일 항우연 내부 사정에 정통한 과학계 관계자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감사를 통해 항우연에서 기술 유출 정황을 확인하고 유출을 시도한 의심을 받는 연구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항우연 규정상 중요 기술정보가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는 허가 없이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당연히 중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감사 결과 이런 원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항우연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는 탈착을 막기 위해 시건장치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이 시건장치를 풀고 하드디스크를 떼어냈고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외부로 반출하기도 했다.
고발당한 연구자들은 나로우주센터에 있는 공용 컴퓨터에서 일을 하기 위해 가지고 나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고발당한 연구자 측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 것인데 이렇게 되니 억울하다"며 "항우연 연구자 80% 이상이 이렇게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항우연 관계자는 "항우연 연구자 80% 이상이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하드디스크를 옮길 필요 없이 클라우드를 통해서 대전과 나로우주센터에서 일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들은 이미 누리호 발사가 성공한 뒤인 올해 5월 이후 관련 연구자료를 집중적으로 열람했다. 기술 유출에 무감각한 분위기는 비단 항우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에 만연해 있다. 항우연 같은 출연연은 국가 보안과제를 주로 수행한다. 국가 보안과제는 연구개발 성과 등이 외부로 유출되면 기술적·재산적 가치에 상당한 손실이 예상돼 보안 조치가 필요한 연구과제로 정의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국가 보안과제 중 약 4분의 1을 출연연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가령 항우연에서 연구하고 있는 우주발사체나 위성이 그런 보안과제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출연연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출연연은 연구원들이 민간기업이나 해외 기업으로 이전할 때 기술 유출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춘 곳이 전무하다. 이번에 항우연에서 일어난 하드디스크 반출 사태도 내부 시스템을 통해 적발된 것이 아니라 내부 고발자가 있어서 드러났다.
최근 민간기업을 비롯해 외부로 떠나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늘고 있다. 과기정통부 산하 25개 출연연을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이직 등에 따라 자발적으로 출연연을 퇴직한 인원이 5년 새 50% 증가했다. 2018년 128명에서 2020년 182명을 기록하더니 지난해 189명으로 늘었다. 출연연 정년퇴직자 역시 한 해 200명이 넘는다. 자발적 퇴직자와 정년퇴직자를 합치면 4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한 해 출연연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기술 유출 사건은 대부분 전·현직 내부 직원들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된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등의 조사에 따르면 기술 유출자의 약 80%가 전·현직 직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민간기업으로 옮기는 출연연 연구자에 대한 이직 가이드라인이나 퇴직자 소재를 파악하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그런데도 이들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출연연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 기술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NST에 따르면 출연연 정년퇴직자에 대한 소재 파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발적 퇴직자는 퇴직 당시 1회 조사 이후 소재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민간기업으로 이직할 때 기출 유출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퇴직자가 해외 기업으로 옮길 때에는 사전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 이직 시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출연연의 존재 목적 중에는 민간기업이나 대학에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있다"며 "그러나 이는 기술 유출 우려 등을 불식시킨 후 절차에 맞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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