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1년 전 레고랜드 사태의 교훈
유동성 공급과 충격흡수 등
전방위 안정 조치덕에 극복
시장 있는한 금융위기는 상수
강력한 사전 규제 못지않게
신속·충분한 초기대응 필요해
어느덧 우리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 1주년을 맞이했다. 아직 그 여진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래도 최악의 국면은 넘겼고 전체적으로 큰 무리 없이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복기를 통해 향후 시사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작년 9월 말 강원도가 레고랜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해 회생 신청을 발표한 후 일주일 만에 200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부도 처리되면서 금융시장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필 한 주 전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서 통화 긴축에 대한 우려로 금융시장이 불안감에 휩싸이던 절묘한(?) 타이밍에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누적돼 임계점에 도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문제가 발화되면서 차환 리스크가 금융시장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부동산 PF 시장의 화마는 지방자치단체 보증 ABCP의 매각 실패로 번지더니 특정 대기업 관련 시장 불안 정보가 확산되고 둔촌주공 PF 차환 실패 소식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급기야 PF 대출을 주도했던 증권사와 시공사인 건설사들의 '데스노트'까지 시장에 나돌았다. 이로 인한 금융경색으로 회사채 스프레드와 CP 스프레드는 신용등급 AA 기준과 A1 기준으로 각각 위기 전 1.00%포인트와 0.45%포인트 수준에서 1.75%포인트와 2.14%포인트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에 대응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그리고 한국은행 등 관계기관이 정책 공조를 통해 전방위적 시장 안정 조치를 취했다. 정책 대응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첫째, 관계기관 회의를 통해 시장 상황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미시적인 대응 방안 구축을 도모했다. 둘째,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 조치 유예와 은행 및 저축은행의 예대율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 충격을 흡수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이 '피니시 블로' 역할을 했다. 증권사, 은행, 증권금융, 주택금융공사, 심지어 한은까지 망라해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증권사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대대적인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러한 총력 대응을 통해 마침내 12월 초를 기점으로 주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이 존재하는 한 상수일 수밖에 없다. '블랙 스완'은 말할 것도 없이 '회색 코뿔소'라 할지라도 사전적인 완전 제거는 불가능하다. 1988년 바젤협약을 통해 은행들에 대한 건전성 규제가 도입됐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전 10년간 35건에 불과했던 금융위기는 이후 10년간 78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대응해 바젤Ⅱ·Ⅲ를 거치면서 규제의 범위와 강도는 한층 더 강화됐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전적 봉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위기는 사전적 규제 못지않게 사후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각인시켜줬다. 위기의 본질은 공포다. 경제학자들이 1929년 대공황의 본질을 '공포의 전염'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펀더멘털한 위험보다 정작 그 대응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공포다. 공포는 화마와 같이 확산성을 갖는 만큼 이를 진압하는 데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두 가지 원칙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첫째는 신속해야 하고, 둘째는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발화 초기에 필요량보다 훨씬 많은 공세를 통해 초동 진압에 성공해야 하고 이를 통해 정책당국의 신뢰를 도모해야 재발화를 방지할 수 있다. 작년 레고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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