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잔치' 이어 '종노릇' 발언…대통령 압박에 상생금융 확대되나
'횡재세' 도입 정치권 논의 촉각…은행들은 '난감'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한지훈 민선희 기자 =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올해 초 은행들의 막대한 성과급 지급을 '돈 잔치'에 비유한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종노릇'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은행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고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권은 계속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는 반면 서민과 소상공인들은 원리금 상환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그동안 은행권이 추진해 온 상생금융이 윤 대통령의 기대에 못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은행권의 추가 상생금융 방안이나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횡재세' 도입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자칫 시장 논리나 구조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불만도 드러내고 있다.
윤 대통령, 금융지주 '사상 최대' 실적 속 재차 강도 높은 비판
30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고금리 장기화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올해 3분기까지 16조원에 달하는 당기순이익을 올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한 상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강도 높은 은행 비판 발언은 지난주 5대 금융지주의 실적발표가 완료된 가운데 나왔다.
은행권은 여전히 높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민생 현장에서 만난 소상공인이나 서민의 삶은 고금리 부담에 팍팍한 현실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들의 말을 전달하는 형식이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종노릇'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은행권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에도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은행권, 상생금융 추가 확대 전망…'횡재세' 논의도 고개
올해 초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서민금융 및 상생금융 확대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발표된 금융권의 다양한 상생금융 활성화 방안 규모는 1조1천479억원(금융권 발표 기준)에 달한다.
이는 수수료 및 금리 인하, 연체율 감면, 원금 상환 지원, 채무 감면 등 소비자가 받게 되는 혜택 규모를 합산한 것이다.
지난 8월 기준 금융권이 실제 집행한 상생금융 실적은 4천7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돈 잔치'보다 수위가 센 '종노릇' 발언을 내놓자 당장 상생금융을 추가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여기서 나아가 아예 은행을 대상으로 이른바 '횡재세' 도입 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횡재세란 과도한 수익을 올린 기업에 대해 법인세 이외에 추가로 물리는 조세다. 고금리 상황이 은행에는 일종의 '횡재'였으니 추가 조세 의무를 지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지난 27일 열린 금융당국 종합 국정감사에서 "초과 이윤세 도입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유럽연합(EU)이 도입한 연대 기여금 같은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기본적으로 횡재세 도입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국감에서 "나라마다 정책 내용이 다른 것은 정책마다 장단점이 있고 나라마다 특유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며 "정부 기본 입장은 어려운 분들이 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는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은행 관련 이슈에 대해 직접적으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횡재세라는 개념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이날 증시에서 횡재세 도입 우려로 금융지주들의 주가가 하락하자 대통령실은 "현장의 목소리를 우리 국무위원, 다른 국민에게도 전달해 드리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 어떠한 정책과 직접 연결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출금리 억지로 낮추면 역마진"…난감한 은행권
윤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이 전해지자 은행들은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올해 초 윤 대통령이 '은행 돈 잔치'를 비판하자 적극적인 상생금융 등으로 화답해온 은행권 입장에서는 윤 대통령의 추가 주문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그동안 정부 정책 방향대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이윤을 추구한 것일 뿐"이라며 "시장 금리가 올라 있는데 대출 금리를 억지로 낮추면 바로 역마진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한쪽에선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대출 금리를 올리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고금리 부담에 허덕이는 서민을 배려하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 관계자는 "은행은 정부 종노릇을 해도 되나"라며 "이런 일이 반복되니 한국이 우간다보다 못한 금융 경쟁력을 가졌다는 얘기까지 나오지 않나"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경기를 살리는 게 답이지 은행을 때리는 게 답은 아닌 것 같다"며 은행들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다만, 더 적극적인 사회 공헌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이자 이익을 많이 가져온 것이 사실"이라며 "순익의 일정 부분을 출자해 별도의 서민금융이나 중소기업 지원은행, 벤처캐피털 펀드 같은 것을 만드는 방식은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앞서 이날 공개된 '2022 은행 사회공헌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연합회와 회원기관(은행·보증기금·한국주택금융공사)은 작년 사회공헌 사업에 총 1조2천380억원을 지원했다.
이는 전년(1조617억원)보다 1천763억원 늘어난 것으로, 지난 2006년 보고서 발간 이래 가장 많았다.
sj9974@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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