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의 '영끌 비판' 못내 아쉬운 이유 [마켓톡톡]
정부의 규제완화·정책금융 탓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 타
주담대 3월 이후 10개월 연속 ↑
“영끌 위험” 대통령실 거리두기
정부는 올해 1월 '부동산 연착륙'을 유도한다며 부동산 규제를 대거 완화하고,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상품을 시장에 풀었다. 그 결과, 서울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를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상승했고, 가계대출은 다시 증가했다. 그런데 10월 들어 서울 아파트 전망지수와 매매신고 건수는 다시 내려오자, 대통령실은 자신들이 펼친 정책이 유도한 대로 집을 구입한 이들의 영끌 투자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5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했다. 정부는 지난 1월 30일에는 주택금융공사를 통해서 9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제한 없이 최장 50년 동안 최대 5억원을 연 4%대 금리로 빌려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을 도입했다.
특례보금자리론 기준은 왜 '9억원 이하'일까. 아파트 중위가격을 보면 답이 나온다. 중위가격은 아파트 매매가를 가격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가격을 뜻한다. 지난 9월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의 아파트 중위가격은 5억3700만원, 인천은 3억7900만원, 대전은 3억4900만원, 부산이나 대구는 3억원대 초반이다. 반면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9억5900만원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시작부터 서울 아파트 거래를 염두에 두고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특례보금자리론의 혜택도 서울에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 지난 10월 29일 연합뉴스와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상품이 중단된 이후 신고된 실거래가격이 6억~9억원인 아파트의 거래 비중은 지난 9월 11.0% 대비 4.4%포인트 줄어든 6.6%였다. 서울은 특례보금자리론 중단 후 6억~9억원 이하 거래 비중이 27.9%에서 25.1% 감소했다.
서울시의 집값을 끌어올릴 만한 정책이 나오자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3월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주담대는 3월 1.0%, 4월 1.8%, 5월 3.6%, 6월 6.4%, 7월 5.6%, 8월 6.6% 증가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도 조치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14일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에서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상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주담대 증가세는 멈추지 않았다.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9월 주담대는 4조9000억원 늘어나며 전월 대비 5.7% 증가했다. 10월 5대 대형은행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규모는 최근 2년 만에 가장 큰폭으로 늘어났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월 26일 현재 684조818억원으로 한달 전보다 2조4723억원 늘면서 2021년 10월 이후 최대 증가치를 기록했다.
최근 아파트 가격 상승의 혜택도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11개구로 집중됐다.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16일 기준으로 10월 전국 주택 가격은 지난 7월보다 0.07% 상승했고, 서울은 0.22% 상승했다. 세종시와 일부 수도권 도시를 제외하면 모두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주택 유형을 아파트로 바꿔 보면 전국 아파트 가격이 3개월 전보다 0.09% 상승한 데 그친 반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0.44% 상승했다. 서울에서도 강북 14개구 매매가 평균이 3개월 동안 -0.18%로 하락했는데, 강남 11개구는 강남구 1.64% 등 1.00% 증가했다.
신규주택 공급량도 서울로 몰렸다. 30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 분양 가구수는 12만6345가구로 1년 전의 절반에 못 미쳤지만, 서울 분양 가구 수는 같은 기간 1만4992가구로 1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한국은행 등 여러 기관에서 예측했듯 고금리 시대에 반드시 동반해야 하는 가계대출의 축소는 주담대의 폭증으로 시기를 놓쳤다. 올해 1월 서울 부동산 부양 정책의 여파로 가계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24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서 "현재 가계대출 증가에 정책금융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특례보금자리론 한도 잔액과 신청분 중 미실행액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수개월 동안 정책금융이 가계대출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혹은 '연착륙 유도 정책'의 여파로 증가한 가계대출의 책임을 오히려 집을 산 국민에게 돌리려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지난 10월 29일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나 '영끌 투자' 이런 행태는 정말로 위험하다"며 "가계 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기업 부채로 인해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몇십배 위력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사실 곤란해진 것은 정책에 따라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다시 오를 때 집을 산 사람들이다. 30대가 주도해 생애 최초로 주택을 산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지난 3분기가 고점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9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7~9월 생애최초주택 구매자는 9만8225명으로 2년 만에 가장 많았다. 30대가 전체의 43.7%로 생애 최초로 주택 구매 증가세를 이끌었다.
그런데 KB부동산이 발표한 '10월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전망지수가 올해 1월 65에서 8월 106, 9월 107로 오르며 가격 상승이 전망이 우세했는데, 10월에는 98로 3개월 만에 다시 100 밑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이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서울시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신고 건수도 8월 3849건에서 9월 3354건으로 줄었고, 10월 30일 현재 매매신고 건수는 958건에 불과하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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