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김의 예술법정] 예술가가 작품 불태우는 뜻밖의 이유
정부 가격매겨 상속세 부과
유족은 막대한 부담 떠안아
이를 피하려 소각·기부 택해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타계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알린 '단색화' 사조의 중심에 섰던 그다. 유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뒤로하고, 그의 유작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면 그가 남긴 작품들은 어떻게 될까.
한국 근대화의 대가 김흥수 화백의 유족은 유작을 둘러싸고 연이은 소송전을 치러야 했다. 유족은 2016년 작품 73점을 보관하며 김 화백의 작고 전 미술관 건립 등을 논의하던 한 재단과의 소송에서 승소해 작품을 반환받았고, 2017년 이를 다른 재단에 기증했으나 다시금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유족 측은 미술관 건립이 기증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재단을 고소했다. 재단 측은 거액의 상속세를 물어야 할 형편에 처한 유족이 조건 없이 기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화백이 타계하자 과세 당국은 유작의 가치를 110억원으로 추산하고 상속세 48억원을 부과했다. 작품을 다 팔아 현금화하지 않는 한 세금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실제로 유족은 기증을 통해 유작에 대한 상속세를 면제받았다.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면 늘 상속세와 과세 기준의 적정성이 논란이 된다. 미술 작품은 속성상 '정가'가 없다. 전시 가격, 매매 가격, 공정 시장 가격 등이 따로 존재한다. 전시 가격은 갤러리에서 판매할 때 작가와 갤러리 간 상호 협의를 통해 책정되는 가격표라면, 매매 가격은 실제로 작품이 팔리는 가격이다. 갤러리냐 경매회사냐 아니면 사인 간 거래냐에 따라, 그리고 거래 당시 작품의 인기도나 유행 외에 여러 가지 요인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과세 당국이 상속세를 부과할 때는 공정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공정 시장 가격은 합리적인 적정 시장 가격, 즉 예측 가격을 말한다. 시장에서 거래가 되지 않거나 거래가 어려운 작품도 작가의 다른 작품, 동시대 유사 작가의 유사 작품 등과 비교해 가격을 매긴다.
다작을 한 작가일수록, 고가에 거래된 기록이 남은 작가일수록 상속세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 남기고 간 작품들이 모두 상업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설사 시장에 내놓는다 해도 단기간에 작품을 팔기도, 제 가치에 팔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은 개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어떤 작가들은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살아생전에 자신의 인생이 담긴 작품의 상당수를 불태우기도 한다. 유족은 막대한 세금을 피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미술관이나 재단에 기증한다. 기증처를 찾기 어려워 미술과 무관한 공익재단에 기증하거나 스스로 재단을 만들기도 한다.
4만점 이상의 다작을 했던 파블로 피카소가 사망하자 프랑스 정부는 꾀를 내어 상속세의 현금 납부 원칙을 깨고, 작품 물납으로 대신 받아 파리의 명소가 된 피카소 미술관을 건립했다. 지난해 한국에도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도가 도입됐다. 지극히 제한적이고 물납 기준도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강국이 내놓은 지혜로운 대안 중 하나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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