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의 스릴러, 김은희 작가만큼 쫄깃하네('오픈 더 도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문은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나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건, 여러 상징과 은유로 해석되곤 한다. 김은희 작가가 쓴 드라마 <악귀>에서 문은, 저편 세계의 이질적인 존재인 악귀가 이편으로 넘어와 타인의 몸으로 스며드는 통로처럼 기능한 바 있다. "문을 열었네?"라고 말하는 악귀는 그래서 문을 연 자의 몸에 스며들어 그를 스스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통제불가 상태로 이끈다.
공교롭게도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기도 한 장항준 감독의 새 영화 <오픈 더 도어>도 역시 그 문을 중요한 오브제로 활용한다. 여기서 문은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 같은 의미다. 열었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문. 너무나 궁금해 열지 않을 수 없지만, 열면 또 다른 파국이 기다리는 그런 문을 열고 치훈(서영주)이 들어가는 것으로 <오픈 더 도어>는 시작된다.
그 문 안에는 매형 문석(이순원)이 있고, 그들은 술을 마시며 옛일을 회고하기도 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지만 갑자기 술에 취한 치훈이 강도에 의해 살해된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감정이 격앙된 치훈은 문석에게 왜 자기 누나 윤주를 때렸냐고 추궁하고, 문석은 윤주가 치훈이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맞서면서 꺼내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툭 튀어나온다. 그 한 마디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굳게 닫혀 있던 이 가족의 비극적인 진실을 꺼내놓는다.
'문, 전화, 제안, 도망, 기타'라는 다섯 개의 소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그 소제목 하나하나에 스릴러적인 긴장감과 긴박감을 담아내는 연출을 선보인다. '문'이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는 그 경계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면, '전화'는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서 비롯되는 격앙된 감정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제안'은 절망적인 상황에 몰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제안을 꺼내놓을 때 느껴지는 그 범죄적인 긴장감을 담아낸다. '도망'이 일종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최고조에 이른 액션의 긴박감을 담아낸다면, '기타'는 이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었으나 당시에는 한가롭고 심지어 설레기까지 했던 평온한 나날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비극과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그리며 끝을 맺는다.
71분짜리 짧은 영화지만 <오픈 더 도어>는 빈틈없는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서사가 돋보이는 스릴러다. 마치 장항준 감독이 스토리텔러로 참여하곤 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사건을 극화한 것처럼 스토리텔링이 기막힌 작품이다. 작은 사건에서부터 시작해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개를 드는 진실들이 점입가경의 스토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픈 더 도어>는 미국 교민 사회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이를 극적인 구성을 통해 스릴러의 맛을 살려 놓은 작품이다.
<오픈 더 도어>는 짧은 영화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에 집중하고 사건 역시 압축적으로 표현해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출연 배우가 이순원, 서영주, 김수진, 강애심 이렇게 단 네 명뿐이고(물론 지나치는 인물들이 몇몇 등장하긴 하지만) 공간도 문석의 집과 치훈이 일하는 식당 그리고 치훈의 엄마가 운영하는 세탁소가 전부인지라, 한 편의 압축적인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짧고 압축적이지만 스릴러의 맛이나 그 서사가 건드리는 울림과 여운은 더 길게 남는다.
결국 스릴러는 금기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생겨난다고 했던가. <오픈 더 도어>의 문은 바로 그런 금기의 경계를 은유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스릴러의 정석 같은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챕터인 '기타'편에 등장하는 '로망스'는 그 담담한 연주 속에 영화 <금지된 장난>의 은유를 담아 넣었다. 결국 모든 비극에는 그 시발점이 존재하기 마련인데(물론 그 때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겠지만) 한가롭고 심지어 설레기까지 했던 그 시발점이 됐던 평온한 나날들을 로망스에 담아 전하는 엔딩은 실로 압권이다. 김은희 작가를 '대가'라 부르며 자신을 낮췄던 장항준 감독이지만, 그의 스릴러 역시 만만찮다는 걸 <오픈 더 도어>는 증명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오픈 더 도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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