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조’ 내년 복지 예산 분석해보니···‘약자 복지’가 ‘약한 복지’ 될라”
내년도 정부 예산안 중 ‘보건복지 예산’은 122조4538억원이 편성됐다. 올해 본예산(109조1830억원)보다 12.2%(13조2708억원) 늘었다. 정부 전체 예산 증가율(2.8%)의 4배가 넘는다.
예산이 이렇게 늘었으니 시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체감하는 복지는 올해보다 내년이 따뜻할까.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보건·복지 전문가 8명과 함께 내년도 보건복지 예산(안)을 분석했다. 기초생활·보육·아동청소년·노인·보건의료·장애인·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등 7개 분야로 나눠 꼼꼼히 살폈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률 과 인건비·인구 변동 요인을 고려하면 정부의 복지정책이 ‘소극적 현상 유지’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 또 공공의료·사회서비스 등의 사업 예산이 크게 줄어 공공성이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약자 복지’ 정책 기조가 되려 ‘약한 복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30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2024년 보건복지 분야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복지의 기초’라 할 만한 기초생활 분야 예산은 올해 19조1354억원에서 20조8261억원으로 8.8% 증액됐다. 기준 중위소득 인상, 생계급여·주거급여 선정기준 상향, 교육급여액 인상 등의 영향이 컸다. 이 분야를 분석한 김윤민 창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고서에 “비수급 빈곤층의 신규 지원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가구별 실질 급여 인상분은 미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체 수급가구가 증가(올해 109만2000가구 → 내년 118만2000가구)하고 애초에 급여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는 내년 최대 71만3102원으로 오른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에 따르면 올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의 1인 가구 중위소득(전체 가구 소득의 중간 값)은 244만원이다. 보고서는 또 의료급여 예산이 1.8% 감소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은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보건복지부 소관 아동·청소년 분야 예산은 2조8209억원으로 올해(2조8384억원)보다 0.62% 감소했다. 김아래미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고서에 “아동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감소분을 아동·청소년의 복지 수준을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사업별로 ‘약자 복지’가 선택적으로 반영됐다”고 했다.
특히 지역아동센터 환경개선비·학교돌봄터사업비는 전액 삭감됐다. ‘적극 확대’가 필요한 요보호아동 자립 지원, 가정위탁 지원 및 운영, 다함께돌봄센터 확충 등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내년 노인복지 예산은 25조6330억원으로 올해 대비 10.3% 늘었다. 노인일자리·사회활동지원 사업 예산(2조262억원, 증가율 31.6%)이 크게 늘었다. 반면 ‘노인 공공돌봄’은 취약해졌다. 내년 노인요양시설확충 예산은 올해 548억원에서 217억원으로 60.4% 줄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예산은 5461억원으로 올해보다 8.8% 증가했다. 사회복지사 등 인력 증가에 따른 인건비 인상이 반영됐다. 인력 증원은 긍정적이지만 서비스 대상은 55만명으로 올해와 같다. 노인인구 증가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노인 1인당 서비스 단가 역시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한 채 6000원으로 동결됐다.
‘보육 예산’ 편성을 두고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년 보육 예산은 올해보다 14.4% 증가한 7조6406억원이다. 보고서는 “현금급여인 부모급여(2조8887억원)가 서비스급여인 영유아보육료 지원(2조6731억원)의 예산 총액을 추월한 점”을 주목했다. 이를 ‘보편적 공적양육’에서 ‘가정양육’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형용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고서에서 “개인의 보육 정책 선택지를 넓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국의 공적 보육 인프라나 질적 수준이 낮아 단기간의 현금지원으로 돌봄 휴직을 장려하는 가정양육 정책은 장기적으로 한국사회의 역량을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부모급여’의 타당성·효과성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애인복지 예산은 내년 5조13억원으로 올해보다 10.1% 증액됐다. 장애인활동지원 예산도 14.7% 늘어 2조3000억원이다. 발달장애인 지원 사업은 3567억3900만원으로 998억5300만원 증액됐다. 보고서는 “최중증 발달 장애인 주간 개별·그룹별 돌봄사업이 신설된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으로 평가했다. 나머지 사업들은 삭감 혹은 동결 수준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2026년 본사업 시행을 앞두고 진행 중인 시범사업 규모가 작아 정책 방향을 알기 어려웠다. 올해 4곳의 지자체에서 한 시범사업이 내년엔 8곳으로 확대되는데 참여자는 210명이다.
내년 예산안에선 사회서비스(돌봄·재활·상담 등의 서비스) 전달체계와 보건의료 분야 예산 삭감이 두드러졌다.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예산은 올해 22억2534만원에서 21억6399억원 2.8% 줄었다. 사회서비스 설립 및 운영 예산이 2023년 302억1900만원에서 내년 177억3100만원으로 41.3%나 삭감됐다. 이주하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고서에 “사회서비스의 고도화란 공공성 확보에 있다”며 정부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예산을 제외한 내년도 보건의료 예산은 올해보다 8886억원 감소한 3조6657억원이 책정됐다.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예산은 올해 1511억1500만원에서 내년 1416억500만원으로 축소됐다. 공공의료가 겪는 위기를 고려하면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전년에 비해 28.5% 감액된 146억원이 편성됐다. 반면 바이오헬스·디지털헬스 등 ‘신산업’ 투자 성격의 보건의료 연구개발사업에는 약 834억원을 증액했다.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보고서에 “내년 보건의료 예산은 공공의료 포기 및 의료민영화 추진 예산안”이라고 비판했다.
보고서를 쓴 전문가들은 정부의 ‘약자 복지’ 기조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윤민 교수는 “수급자에게 ‘약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낙인이 수급의 권리성을 약화시켜 제도의 사회 안전망 기능을 피상적인 수준으로 제한할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보고서 ‘총평’을 쓴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건전재정 기조 속에 세수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복지 지출도 늘릴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어려운 민생에 대한 정부의 무감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11월1일 이 보고서를 발행한다. 김은정 참여연대 합동사무처장은 “국회 예산안 심사에서 공공인프라와 사회서비스원 지자체 지원 예산을 복원해 윤석열 정부의 선택적 약자 복지와 산업화하는 사회서비스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10301639001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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