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시티 진입···전문가들 “하마스 섬멸 목표 달성에는 회의적”
가자지구 지상전을 개시한지 사흘째인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무장대원들과 본격적인 교전을 벌이며 진격 중이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 거점도시인 가자시티에 진입해 포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FP통신은 가자지구 내부 목격자들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의 탱크가 가자시티 외곽에 진입했고, 핵심 도로를 차단한 채 차량들을 포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몇차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하마스를 뿌리뽑지 못했던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할 우려가 크다면서, 전쟁을 통해 ‘하마스 궤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전 엑스(옛 트위터)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지상군이 밤새 가자지구 북부에서 작전을 확대하며 서서히 전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명은 “가자지구에서 무력충돌 와중에 건물과 땅굴 등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우리 군을 공격하려는 수십명의 테러범을 사살했다”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대전차 유도탄 진지와 관측소 등 기반시설 600여곳을 타격하고, 드론을 동원해 20여명의 하마스 대원을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탱크가 포격을 가하고 병사들과 함께 진격하는 영상과 사진 등을 공개했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가자지구 내 호텔 옥상에 이스라엘 국기를 꼽는 사진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퍼졌다.
이스라엘군은 지상작전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AFP통신은 이스라엘 탱크가 가자시티 가장자리로 진입하고 북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핵심 도로를 차단했다고 목격자를 인용해 전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의 주민들은 “즉시 남부로 이동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규모 작전을 앞둔 최후통첩으로 풀이된다. BBC는 이스라엘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단기전으로 이번 전쟁을 끝내는 대신 가자지구의 주요 거점을 한조각씩 장악해가는 ‘슬라이스’ 장기 전략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지상전이 격화하는 가운데 레바논 등 주변 지역으로 전쟁이 확산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레바논에 있는 하마스 무장대원들은 이날 이스라엘 접경 도시인 나하리야를 향해 미사일 16발을 발사했다.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미사일과 로켓포, 박격포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스라엘 역시 레바논 내 하마스 거점 3곳을 타격하는 등 반격했다.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 정착민이 올리브를 수확하던 팔레스타인 남성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하는 등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하마스 섬멸’이라는 지상전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벌써부터 내놓고 있다.
텔아비브 대학 모세다얀센터 팔레스타인 연구포럼 마이클 밀슈타인 회장은 BBC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쉽게 쓸어버릴 수 없는 하나의 관념”이라면서 현재 상황이 2003년 미국 주도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려 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후세인의 바트당 세력을 뿌리뽑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권력의 진공 상태에서 사회적 대혼란이 닥치면서 오히려 강력한 저항의 씨앗을 뿌리는 결과를 낳았다. 밀쉬타인 회장은 “집권당을 제거하겠다거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환상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정치인인 무스타파 바르구티 팔레스타인 민족 이니셔티브(PNI) 의장 역시 “하마스는 풀뿌리 조직”이라면서 “하마스를 제거하려면 가자지구 전부를 인종청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전후 처리 방안도 수립하지 않은 채 지상전을 서두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설령 이스라엘 계획대로 하마스 궤멸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하마스를 대신할 정부를 어떻게 세울지도 불분명하다.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2006년 가자지구 총선에서 하마스에 패배한 뒤 가자지구에서 축출된 PA는 서안에서조차 팔레스타인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무함마드 쉬타예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총리도 이날 가디언 인터뷰에서 ‘두 국가 해법’의 틀 속에서 서안지구에 대한 포괄적인 정치적 해법 없이 PA로 하여금 가자에서 업무를 보게 한다는 건 “마치 팔레스타인 당국을 F-16이나 이스라엘 탱크에 태우는 셈“이라며 이스라엘이 세울 가자지구 정부 참여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결국 이스라엘 안팎에서는 정치적 해결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날 NYT 칼럼에서 이스라엘이 군사적 보복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팔레스타인인들로 구성된 정부를 세우더라도 주민들의 반발을 초래할 뿐이고 막대한 관리 비용도 결국 이스라엘 군사력과 경제에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프리드먼은 16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 당시 맘모한 싱 인도 총리는 군사적 보복 대신 외교적 해결책을 선택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냈다면서 인도주의적 휴전과 인질 교환의 문을 열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4년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에 투입됐던 이스라엘 특수부대 출신 벤지온 샌더스도 지난 28일 NYT 기고문에서 2014년 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모두 대피했다는 말을 믿고 가자지구 민가에 수류탄과 총격을 퍼부었으나 사실과 달랐다면서 “지상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 작전을 통해 하마스의 위협을 결정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되풀이되는 거짓말이다. 우리의 희생과 죽음, 가자지구에 초래된 파괴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하마스는 더욱 강해졌다”면서 정치적 해법만이 평화와 안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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