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시 질주하는 '이단아' 핑크·베리·블루 '너'의 정체는
루비 스타 네오, 프로즌 베리 메탈릭, 젠션 블루 메탈릭…. 색깔 이름 치고는 특이한 이 이름을 다 불러주기 전까지 이것들은 그저 흔한 자주색·분홍색·파란색에 지나지 않았다.
718, 타이칸, 911 등 포르쉐의 대표 모델 운전석에 앉아 극한의 주행성능에 감탄하기도 잠시, 검은 아스팔트 위 흰색·검은색·회색 등 무채색 차량들을 지나는 동안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시선이 꽂힌 곳은 앞유리 너머로 보이는 보닛 끄트머리와 좌우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차량 측면부. 생소한 이름의 색을 입은 포르쉐가 바깥에선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었다.
주차를 마치고, 하차한 뒤에야 컬러가 한눈에 들어왔다. '차는 타고 다니는 도구일 뿐 전시품이 아니다'라는 실용주의자들도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의 색. 포르쉐에 차량이란 고유의 빛깔을 완벽히 구현할 도화지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포르쉐 차량을 운전하는 동안에는 만끽할 수 없는 포르쉐의 팔레트 일부를 소개한다.
718, 루비 스타 네오
이 차의 색상을 '루비 스타 네오(Ruby Star Neo)'라 쓰고 '꽃분홍'이라고 읽는다. 루비 스타 네오라는 이름의 색을 입은 포르쉐 718 박스터 GTS 4.0의 첫인상은 태어나서 본 실물 자동차 중 가장 강렬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 차의 색을 단순히 분홍색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일반 분홍색보다 더 예쁜 색감을 말할 때 흔히들 어르신들이 쓰는 '꽃분홍'이라는 애정 어린 단어가 튀어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루비 스타 네오는 분홍과 붉은색이 오묘하게 섞인 루비라는 보석을 떠올리게 한다.
분홍색에 검은색을 몇 방울 떨어뜨린 듯한 톤 다운된 모습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오묘하고 희귀한 느낌까지 준다. 검은색의 바퀴, 내·외장재 등과 어우러지는 루비의 조화도 예사롭지 않다. 곡선이 강조되는 포르쉐 고유의 매끄러운 실루엣과도 잘 어우러진다.
포르쉐에 따르면 이 차는 전설적인 포르쉐 911 카레라 RS의 루비 스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탄생했다고 한다. 이 차의 저력은 일반도로를 달렸을 때 더 잘 느낄 수 있다. 무채색 일변도인 도로에서 강렬한 '꽃분홍' 포르쉐를 만난다면 누구라도 고개를 꺾어 한 번 더 구경하고 싶을 것이다. 이 차를 마주한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하는 건 포르쉐 718 박스터 GTS 4.0의 운명일 것이다.
짧은 주행이었지만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훨씬 더 인상적이다. 나라도 '루비' 색상의 포르쉐를 끄는 운전자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질 것 같다.
타이칸, 프로즌 베리 메탈릭
'프로즌 베리 메탈릭(Frozen Berry Metallic)'은 포르쉐 전기차 라인업인 '타이칸'을 위해 개발된 색상이다. 프로즌 베리 메탈릭을 입은 타이칸은 '핑크 포르쉐 타이칸'으로 불리며 국내외에 많은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핑크'라고 하면 강렬하고 튀는 컬러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프로즌 베리를 실제로 보면 연분홍빛이 도는 장미색에 가깝다. 이 색깔을 개발하는 데 포르쉐의 두 여성 디자이너가 투입됐다. 프로즌 베리가 만들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4년이었다.
두 디자이너는 'E(일렉트릭)-포르쉐'에 걸맞은 컬러를 찾길 원했고, 이를 위해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기를 연다'는 의미의 이른바 '헤리티지 방식'을 채택했다. 두 디자이너는 1992년 개발된 '라즈베리 레드'를 기본으로 조금 더 신선하고 가벼운 컬러를 뽑아냈다.
같은 프로즌 베리지만, 유럽에선 여성적인 컬러로 인식되는 반면, 아시아에선 스포티한 색상으로 평가받는다. 프로즌 베리를 개발한 디자이너들은 외신 인터뷰에서 "장미가 스포츠카에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강하진 않지만 부드럽지도 않은 색조"라고 설명한 바 있다.
무채색 차량만 가득한 서울 시내에서 '핑크 타이칸'은 세련된 이단아 같은 존재다. 타이칸의 제조사가 포르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프로즌 베리를 보고 "촌스럽다"는 혹평을 내리는 이들은 없다. 가장 인색한 평가가 화이트 타이칸 오너가 내린 "금방 질릴 것 같다"는 정도였다.
프로즌 베리 타이칸 시승의 가장 큰 단점은 달리는 차를 운전자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서 있을 때가 아니라 달리고 있을 때 내 차의 컬러를 보고 싶게 만드는 색. 이것이 포르쉐 프로즌 베리였다.
911, 젠션 블루 메탈릭
무채색 빌딩숲 사이로 난 아스팔트길을 오가는 흰색·검은색·회색 자동차들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푸른 야생화. 외장 색상으로 '젠션 블루 메탈릭(Gentian Blue Metallic)'을 입은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는 빨간색·노란색처럼 '나 스포츠카요' 티 내지 않는다. 가을 하늘을 머금은 야생화 용담(龍膽·Gentian)의 푸른빛에 금속성 광택이 더해진 젠션 블루 메탈릭은 모두에게 관심받기보다는 이 색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지음(知音)을 위해 존재하는 컬러다.
서늘한 고산지대가 본고향인 용담은 가을에 꽃을 피운다. 한여름 너른 들판에 비해 지나는 나비도, 들르는 꿀벌도 드문 가을 산자락에서 용담은 푸른 꽃을 틔운다. 한여름에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최대한 많은 꿀벌과 나비를 끌어들이는 게 열매를 맺고, 씨앗을 거두기 위한 꽃의 소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 유리하겠지만 용담은 쉬운 길을 마다한다. 서늘한 바람 속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기다릴 뿐이다.
젠션 블루 메탈릭은 2020년형 911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올해로 출시 60주년을 맞은 911은 포르쉐를 상징하는 모델로 꼽힌다. 1963년 911이 처음 출시됐을 때 자동차 마니아들은 이 차의 툭 튀어나온 헤드라이트에 '개구리 눈'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이는 오늘날에도 포르쉐의 애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완성차 제조사들은 저마다 스포츠카·슈퍼카와 고성능 모델을 내놓으며 포르쉐 911을 적수로 꼽고 있다.
용담의 꽃말은 승리, 인내, 사랑과 열정, 흔들리지 않는 기상 등을 아우른다. 젠션 블루 메탈릭을 두르고 있는 911의 자태가 더욱 도도해 보인다.
[이유섭 기자 / 박소라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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