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스물세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10. 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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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일기(롤랑 바르트 지음 /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애도 일기’ 표지



이태원 참사 1주기였다. 엄밀한 의미로 우리는 당사자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없다. 세월호도 그랬고, 이태원도 그렇다. 우리는 기억하고 약속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애도를 표현하지만, 우리의 슬픔과 당사자들의 슬픔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함부로 공감할 뻔한 내 실수를 다잡아 준 건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2년 동안 썼던 애도에 관한 일기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바르트의 평생 동반자는 어머니였다. 이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후 롤랑 바르트의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었다. 바르트는 1977년 어머니가 죽은 후 2년 동안 애도일기를 썼고, 3년 후 1980년 그도 세상을 떠났다. 흔히 참사 후 피해자 가족들은 도덕적 주체가 된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시간은 그때부터 애도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그 시간은 타인뿐만 아니라 당사자들도 표현하기 힘들어, 바르트는 아픈 마음으로 아래와 같은 문장을 적었다.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때문에 슬픔의 공동체라는 건 각별하다. 우리는 당신의 슬픔에 함부로 공감할 수 없지만, 당신의 옆에 늘 있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가적 참사에서 당사자들의 옆에 있는 타인은 국가 그 자체가 돼야 한다. 국가가 당신의 슬픔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할 의인화된 존재는 누구일까? 대통령제 국가에선 당연히 대통령이고, 2023년 대한민국에서 그 존재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 존재는 아직 단 한 번도 유가족과 대면조차 한 적이 없다. (맹준혁 / 출판편집자, 출판PD)

맹준혁



■투쟁 영역의 확장(미셸 우엘벡 지음 / 용경식 옮김 / 열린책들)

‘투쟁 영역의 확장’ 표지



‘투쟁 영역의 확장’은 컴퓨터 엔지니어인 화자를 중심으로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 자본주의사회의 병폐, 계급화된 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를 연상시킨다.

미셸 우엘벡이 ‘투쟁 영역의 확장’을 쓰던 1994년 이후 세계는 그 속의 풍경 외피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씁쓸해진다. 시간은 그저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는 어떤 아름다움도 어떤 파동도 없다. 삶을 향한 욕망도 없다. 그저 본능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고독과 소외는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이 아무리 1990년대 초반 소설이라는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투쟁 영역의 확장’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아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 블랙 코미디이며, 볕을 쬐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는 주인공을 통해서는 제목과는 달리 전혀 확장되지도 못하고 확장될 수도 없는 투쟁 영역의 페이소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읽는 이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는 정신분열적이고 과격하게 동적인 화자의 내면도 한몫하리라.

한 손에 쥐고 읽기 편한 분량에, 단문들로 이뤄져 쉽게 읽힌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김미향 / 출판평론가, 에세이스트, 콘텐츠 미디어 랩 에디튜드 대표)

김미향



■공감의 반경(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공감의 반경’ 표지



타인의 고통이 불러일으킨 분노와 연민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두 눈과 귀를 믿을 수 없는 비참한 사건·사고가 곳곳에서 일어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애통함과 분노가 끓어오른다. 변화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진다.

“울지 마, 화내지 마. 네 문제일 뿐 내 알 바 아니야.”

역지사지는 감성팔이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 이들은 변혁의 불씨에 냉소를 끼얹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소리는 힘이 빠지고 분노는 명멸하고 만다.

타인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실의에 빠진 우리에게 장대익 교수는 희망의 손길을 내민다. 공감이 얕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반경이 줄어든 것이라고. ‘우리’의 외연이 점점 더 좁아지며 전 세계적으로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지금,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다. 새로운 돛 ‘인지적 공감’을 달고 차별과 혐오의 시대를 건널 때다. (황예린 / 문화비평가, 9N 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황예린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표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는 고통 당사자들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여기서 ‘곁’이란 고통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수발을 들거나 참사 현장을 함께 지켜주는 사람들로, 대체로 고통 당사자의 가족 또는 간병인과 사회복지사나 인권운동가 등이다. 이들이 가장 염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돌보는 고통 당사자의 고통이 끝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곁은 존재한다.

하지만 고통은 절대성을 띤다. ‘남’은 ‘나’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고통 당사자는 때로 그의 곁에게조차 “네가 내 고통을 어떻게 아느냐”고 소리치곤 한다. 이런 말에는 고통 당사자들의 호소와 절규가 함의돼 있기에, 이때 곁들은 함부로 무어라 응답할 수 없다. 오히려 고통 당사자를 이해하고 넘긴다. 그러나 이것이 끝없이 반복되면 결국 결연한 마음으로 고통 곁에 섰던 사람도 파괴되고 만다.

곁들은 고통과 동행하며 고통의 이야기를 사회로 옮기곤 한다. 이러한 ‘곁들의 말 옮기기’는 경우에 따라 고통을 끝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하지만 인권운동가로서 수많은 고통과 그 고통의 곁을 목도했던 저자는 이제껏 많은 곁이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것을 봐 왔다며 사실상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곁들의 목소리는 고통 당사자에 가려져 학계에서도 대체로 지워져 왔다며, 이제는 고통과 함께 곁의 이야기 역시 경청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곁’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는가? 혹은… 진짜 경청해야 할 주체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뉴스를 볼 때마다 의문을 삼킬 수 없는 요즘이다. (김상화 / 문화비평가, 9N 비평연대)

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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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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