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Car야] 도요타 기념관 가보니…세계 1위 비결은 `고객제일주의` DNA
일본 도요타그룹은 작년 전 세계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1000만대 이상을 판매한 명실상부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우수한 성능의 차를 생산하고, 넓은 판매망을 구축하고, 소비자 만족을 위한 사후관리 등 무수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창업주 토요다 키이치로(1894~1952년)의 '고객제일주의' 뜻을 제대로 계승한 덕이라는 평이 나온다.
지난 26~27일 양일간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위치한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과 나고야시에 있는 쿠라가이케 기념관을 각각 투어했다. 이번 투어는 요시오카 신이치 산업기술 기념관 시니어 어드바이저(SA)와, 미야코 요리야스 쿠라가이케 기념관 부관장의 설명으로 진행됐다.
산업기술 기념관은 일본과 도요타의 제조기술 역사를 보여주고, 쿠라가이케 기념관은 창업주인 키이치로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방직회사로 출발한 도요타가 어떻게 자동차를 만들게 됐고 세계 1위 기업이 됐는지를 창업주의 일대기로 보여줬다.
◇방직기에서 자동차로…"사람·사회를 위해"= 도요타는 방직기, 즉 직물을 짜는 섬유업이 그 모태다. 일본의 '발명왕'으로 불리는 도요다 사키치(1867~1930년)는 30년 이상 직기 개발에 몰두해 오다 1924년 전 세계에서 인정받은 'G형 자동직기'를 완성한다. 이 성공을 기반으로 1926년 자동직기 제작소를 설립하고, 아들인 키이치로가 상무로 입사한다.
지금도 도요타그룹의 수많은 계열사 중 자동직기는 핵심 계열사 중 하나다. 자동차의 역사는 아들인 키이치로에서 시작된다.
그는 도쿄대 기계공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뉴욕에서 차가 다니는 모습을 보고 "차가 있는 나라가 이렇게 풍요롭게 살 수 있구나. 나도 일본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미야코 부관장은 "세상과 사회와 사람을 위해 공헌하고 싶다는 것이 중요 창업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키이치로가 자동차에 빠져든 또 하나의 이유는 1923년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다. 대규모 피해 복구 과정에서 활약한 것은 포드 자동차로, 목재 등 물자를 이동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포드는 요코하마, GM은 오사카에서 자동차 생산을 시작하는데 모든 부품을 미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여기서 키이치로는 "일본인의 손과 머리로 차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전해졌다.
◇"사람을 상대하라"…창업주의 고객제일주의 실천= 미야코 부관장은 자동차 산업 발전을 설명하기 전에 키이치로에 대한 3가지 핵심 사안을 먼저 소개했다. △매일매일 일의 개선 △현지현물(직접 가서 보고 만져야 답이 나온다는 의미) △고객제일주의가 그것이다.
이 중 고객제일주의는 현 토요다 아키오 회장 역시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사장 시절 "상대방의 시선으로 일을 해야 한다. 100년 전 큰 개혁의 시기를 겪은 만큼 지금은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키이치로는 1935년 "차를 만드는 것보다 파는 것이 더 어렵다. 차를 만들 때는 기계를 상대하지만, 차를 팔 때는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며 고객제일주의를 선언했다. 쿠라가이케 기념관에는 4개의 라디오라마(디오라마+음성안내)로 당시 시대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중 네 번째 라디오라마는 이러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네 번째 라디오라마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묘사해 놨다. 첫 번째는 한 고객이 픽업트럭 옆에서 화를 내고 있고 키이치로가 두 손 모아 고개 숙이고 사죄하며 포드 트럭에 짊을 옮기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한 고객의 차량이 고장 나자 키이치로가 크라이슬러 승용차를 몰고 고객을 찾아 온 장면이다. 두 장면은 키이치로가 고객이 조금이라도 덜 피해보도록,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도록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경쟁 수입차를 이용한 일화를 보여준다.
키이치로는 1936년 드디어 첫 승용 모델인 AA형을 출시한다. 두 기념관에는 모두 검은색의 AA형 모델이 전시돼 있는데 언뜻 보면 1900년대초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차량의 디자인과 유사하다. 2열 도어는 현재 롤스로이스와 같은 방식으로 열리는, 일반 승용 모델과는 반대로 열리는 방식인 데 기모노나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도 승차가 편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2열에는 손잡이로 이용할 수 있는 줄도 달려 있어 탑승시 편의성도 도왔다. 또 당시엔 도로에 말이 끄는 마차도 다녔기에 경적 소리는 소위 '쨍'하는 소리와 트럼펫과 같은 부드러운 소리 두 가지로 구성됐다.
이 모델은 3350엔으로 당시 쉐보레 모델(3600엔)보다 300엔가량 저렴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부동산 가격이 1000엔, 갓 졸업한 직장인 월급이 70엔인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고가여서 처음엔 관공서를 중심으로 공급했다고 한다.
◇"더 크게 뻗자"…토요다서 토요타로 사명 변경= 키이치로가 사망한 후 3년 뒤인 1955년엔 크라운이 출시된다. 쿠라가이케 기념관에는 민트색 크라운이 전시돼 있는데 전장 4285㎜, 전폭 1680㎜으로, 현재의 소형차 수준이지만 외관상 결코 작게 여겨지진 않고 고급 세단의 이미지가 풍긴다. 2열의 경우 레그룸(다리공간)이 꽤 넓고 소파 같은 느낌의 벤치형 시트인 데, 도요타가 방직 회사에서 시작한 만큼 시트 기술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도요타의 글로벌 1위 계기가 된 모델은 1966년 출시된 코롤라다. 당시 주요 모델은 배기량이 1000㏄였는데 코롤라는 1100㏄로 '100cc의 여유'를 내세웠고, 미국 시장에서 폭스바겐에 이어 '수입차 2위'에 올라섰다. 코롤라는 산업기술 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토요다'에서 '도요타'로의 사명 변경에 대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토요다는 1937년 새 사명을 정하게 되는데, 이유는 가족 기업이 아닌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현재의 '도요타'다. 가장 큰 이유는 '도요타'(トヨタ)를 일본어로 쓰면 8획이 되는데 숫자 8(八)은 한자로 후지산과 비슷한 모양이어서 행운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끝이 '다'가 아닌 '타'로 끝나면서 어감이 보다 강해진 것도 변경 이유 중 하나다.
키이치로는 2018년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당시 사장)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을 때 자동차부 원년 멤버 사진도 같이 전시했다. 아키오 회장은 초기 원년 멤버들에 대해 "이분들은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셨다. 이들은 챌린저(도전자)였고, 이들 덕에 도요타가 큰 회사로 성장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쿠라가이케 기념관에 새겨져 있다.
토요타시(일본)=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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