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의 비극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구약성경의 한 구절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유대인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나서는 대목이죠. 그들이 갔다는 가나안은 지중해 남동쪽 연안,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성경에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지만 지금 이곳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대립과 충돌, 갈등과 분노가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 7일 새벽(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을 사살 또는 납치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면서 양쪽에서 막대한 사상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지난 70여 년간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립니다. 갈등의 당사자는 그곳에서 쭉 살아온 아랍계 팔레스타인인과 1948년 건국한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입니다. 민족 갈등, 종교 갈등, 영토 갈등 등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갈등이 얽히고설켜 있죠.
젖과 꿀이 흘러야 할 땅이 어쩌다 피와 증오로 얼룩지게 됐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분쟁 시작 평화 노력 물거품…'피의 복수' 반복
이스라엘은 지중해 남동쪽 연안에 있습니다. 그 옆에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도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합친 면적은 2만8070㎢로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작습니다. 이 좁은 땅을 놓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각자 자기 땅이라며 지난 75년간 무수한 피를 흘렸습니다. 분쟁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누구의 땅일까
기원전 1000년경 지금의 팔레스타인에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었다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합니다. 유대인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기원후 2세기경 이 땅을 떠났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인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로마 황제가 이들을 진압하고 추방한 것이죠. 이때 유럽과 북아프리카 등지로 흩어진 유대인은 이후 2000년 가까이 조국을 갖지 못한 채 이민족의 나라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유대인이 19세기 후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을 휩쓸던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유대인 사이에서도 독자적인 나라를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죠.
여기까지는 유대인의 얘기고,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겠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이 다른 나라로 떠도는 동안 이 지역에 뿌리내린 사람들입니다. 2000년 동안 다른 데서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자기 조상들의 땅이라고 하니,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분쟁 불씨 된 영국의 이중 플레이
영국의 ‘이중 플레이’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했습니다. 20세기 초 이 지역은 오스만투르크가 지배하고 있었는데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중 영국은 아랍인에게 오스만투르크를 상대로 싸워주면 전후 아랍의 독립을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것이 ‘맥마흔 선언’입니다.
영국은 유대인에게도 비슷한 약속을 합니다. 유대인 금융가들로부터 전쟁 자금을 얻어내기 위해서죠. 이것이 ‘밸푸어 선언’입니다. 한 자리에 두 팀을 예약해놓은 것입니다. 영국은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채 책임을 유엔으로 넘겨버렸고, 유엔은 1947년 이 지역을 유대인 구역과 팔레스타인 구역으로 분할해 제각각 나라를 세운다는 어정쩡한 방안을 내놨습니다.
유대인은 이 안을 받아들여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과 주변 아랍 국가들은 ‘굴러온 돌’의 권리를 인정한 유엔안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바로 다음 날 이집트·요르단·시리아·이라크·레바논 등 5개국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전쟁 초기엔 아랍 연합군이 우세했지만,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반격에 성공해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전쟁은 2차(1956년), 3차(1967년), 4차(1973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한 팔레스타인인은 무장봉기와 테러의 형태로 이스라엘에 저항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테러→보복 공격→테러의 악순환이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좌절된 평화 노력과 폭력의 악순환
평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3년 오슬로협정에서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오슬로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부에 존재하는 강경파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협정을 이끈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1995년 11월 강경파의 손에 암살당했고, 1994년 2월엔 극우 성향 이스라엘인의 총기 난사로 팔레스타인인 2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마스로 대변되는 팔레스타인 강경파 역시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테러를 지속했습니다.
유대인이 믿는 유대교와 팔레스타인인이 믿는 이슬람교는 사실 뿌리가 같습니다. 유대인의 선조 이삭과 아랍인의 선조 이스마엘은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NIE 포인트
1.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알아보자.
2. 맥마흔 선언과 밸푸어 선언의 자세한 내용을 찾아보자.
3. 오슬로협정이 깨진 이유를 얘기해 보자.
이스라엘, 대아랍 외교에 팔레스타인 고립…중동 정치판 흔들려는 하마스의 노림수
<전쟁론>의 저자로 유명한 19세기 독일의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그것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것이죠.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잔혹한 폭력의 배경과 이번 사태에 대한 주요 국가의 대응을 국제 정치적 맥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강경 투쟁’ 고집하는 하마스
먼저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어떤 집단인지 알아봅시다. 하마스는 아랍어로 ‘이슬람 저항운동’이라는 뜻인데요,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된 이슬람 운동 단체 무슬림형제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의 일부가 독립해 만든 조직이 하마스입니다. 하마스는 제1차 인티파다(아랍어로 ‘봉기’ ‘반란’을 뜻함)가 한창이던 1987년 말 설립됐습니다.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반발해 일어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입니다. 이후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암살, 자살폭탄 테러, 로켓포 공습 등의 활동을 벌여 미국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 테러 단체로 지정됐습니다.
하마스는 강령에서 “어떤 당파도 팔레스타인 땅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 “지하드(성전)야말로 대이스라엘 투쟁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강경 투쟁 노선은 팔레스타인 내 또 다른 지도 세력인 파타당의 온건 노선과도 구분됩니다. 이런 노선 차이로 인해 하마스와 파타당은 팔레스타인 내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중 서안지구는 파타당이,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아랍 외교에 제동
하마스와 파타당 간 주도권 다툼은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도 거론됩니다. 최근 이스라엘 일부 정치인이 서안지구를 병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하지 않고 이스라엘 영토로 삼자는 주장이죠. 이에 팔레스타인인들이 반발하면서 무력 충돌이 잇달았습니다. 하지만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지도 세력인 파타당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얻을 목적으로 이스라엘에 강경하게 대응했다는 것이죠.
더 중요한 배경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국제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 아랍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데 이어 아랍의 ‘맏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수교를 추진 중입니다. 오랫동안 적대 관계이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손을 잡으면 팔레스타인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죠.
이렇게 팔레스타인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판을 흔들 목적으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공격당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향해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사우디 등 ‘아랍 형제국’들이 이스라엘 편을 들기가 어려워지니까요.
미국·사우디·이란의 속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주요 국가들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하마스의 공격 직후 항공모함 전단을 이스라엘 부근으로 보내고 미사일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이·팔 분쟁에 국력을 지나치게 소모하는 일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된 관심은 중국의 추격을 견제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 이어 중동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의 이런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점령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데서 미국의 속내가 드러납니다. 일이 커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분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랍 우방국과의 관계를 감안한 발언이죠. 그러면서도 ‘하마스 편’이 아닌 ‘팔레스타인 편’이라고 함으로써 하마스와는 선을 그었습니다. 반면 중동의 맹주를 놓고 사우디와 경쟁 관계인 이란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에 제동이 걸려 반가울 것입니다.
수천 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와중에도 국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입니다.
NIE 포인트
1. 제1차 인티파다, 제2차 인티파다에 대해 알아보자.
2. 팔레스타인은 국가인지, 아닌지 찾아보자.
3. 하마스와 파타당의 노선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유승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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