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성행위한 군인 처벌은 합헌”…‘군 붕괴’라는 헌재의 악몽
[왜냐면] 심기용ㅣ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벌써 네 번째다. 지난 26일 헌법재판소가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또 합헌 선고를 내렸다. 나도 그 선고가 내려지는 현장에 있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 현실 사회에 대한 선고를 들으러 갔는데, 합헌 의견을 낸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자신들이 꾼 동성애 꿈 얘기를 시작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일상생활을 밀접하게 공유하다 보면 동성 간 성행위가 창궐한다.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르게 행정적 징계 정도로는 막을 수 없고, 빈대마냥 강력한 생존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형사 처벌로 강력하게 때려잡아야 막을 수 있다. 이를 막지 못하면 동성에 의해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염려하는 군인들이 많아지고, 결국 상호 간 신뢰와 힘을 잃게 되어 군대가 무너진다는 내용의 꿈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들이 꾼 꿈과 내가 경험한 군대는 좀 달랐다. 나는 헌법재판관들이 우려하는 동성애자지만 군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육군에서 모범 병사로 만기 전역을 했다. 코로나19 때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폐쇄적 환경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했지만, 나는 그냥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서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하고 10시면 잠들거나 야간 경계를 수행했다. 지뢰병이었기 때문에 수해 피해가 일어나면 산을 타며 지뢰 제거 작전을 수행했다. 쉬는 날에도 동성 성행위를 하기보다는 휴대전화를 보거나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를 봤다.
내가 군대에서 잠들어 꾼 꿈도 헌법재판관들이 꾼 꿈과 달랐다. 27살, 뒤늦은 군 생활을 끝내고 전역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해서 잠이 쉬이 들지 않았고, 꿈을 꾸면 면접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그 꿈을 꿀 때면 식은땀이 나서 새벽에 깨었다. 나도 동성애 꿈을 꾸긴 했다. 생활관 동기들과 연애 얘기를 하고 나서 잠이 들면, 동기들이 언젠가 내가 게이라는 것을 알고는 생활관과 샤워실을 같이 썼다는 이유로 더러운 성범죄자 취급하며 나를 비난하는 꿈을 꿨다. 다행히 전역할 때쯤 커밍아웃한 나를 착하고 배려심 깊은 동기들이 웃으며 포용해줬지만, 친해질수록 숨기는 마음이 힘들어 전문상담관에게 상담을 받곤 했다.
현실의 다수 남성군인 역시 헌법재판관들의 꿈과는 달랐다. 헌법재판관들의 꿈속 남성들은 성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폐쇄된 환경에서 동성 성행위를 하게 된다. 난 항상 이 꿈 내용이 이상했다. 현실에서는 성욕을 참지 못한 남성 군인들이 선택하는 것은 여성 성매매였다. 물론 범법을 저지르는 병사들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병사가 선택하는 성욕 해소 방법은 화장실에 상대적으로 오래 머무는 것이다. 그럴 뿐이다. 현실 속 남성 군인들은 대체로 동성과 성행위를 하는 것을 더럽게 여기거나 불쾌해한다. 헌법재판관들이 꿈꾸는 남성상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처럼 내면의 욕구가 꿈으로 발현되는 걸까.
나는 지금 대학을 마무리하고 게이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회원들의 성적 활력과 활동을 지지하는 게이 단체만큼 동성 성행위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도 없건만, 애석하게도 동성 성행위는 창궐하지 않았다. 헌법재판관들이 알면 깜짝 놀라겠지만 이 사람들도 공사를 가리고 사리분별을 한다. 동성 성행위를 많이 하는 혈기왕성한 사람도 있지만, 그도 판단하고, 사랑하고, 부끄러워하고, 상처를 받고, 슬픔을 가지고, 존엄을 훼손당하면 영혼을 다치는 한 인간이다.
군대에서의 동성 성행위는 헌법재판관들이 꾼 동성애 꿈을 기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으로 남게 됐다. 구체적인 삶은 사라지거나 가려졌다. 헌법재판관들을 위해 ‘잠자는 동안 꿈꾸지 않는 방법’을 검색해봤다. 두려움이나 불안함 같은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라고 한다. 동성애가 적지 않게 두려웠던 것일까. 동성애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장가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헌법재판관들이 꿈꾸지 않게 해야겠다. 그래야 신성한 헌법기관이 선고할 때 꿈 얘기를 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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