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은 바꿀 수 있을까, ‘자이언츠 팬’을 ‘롯데 팬’으로
10년 전쯤일까. 야구경기를 취재하러 부산에 갔다. 택시를 타고 기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야구 얘기가 나왔다. “롯데 팬이세요?”라는 내 물음에 택시 기사는 답했다.
“아입니더, 자이언츠 팬입니더. 롯데는 싫습니데이.”
42시즌 동안 단 13차례만 가을야구
순간, ‘아!’ 하는 충격파를 느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롯데 자이언츠’라는 야구단을 품은 부산 사람 중에서 일부는 ‘롯데’ 언급 자체를 꺼리는구나 싶었다. 하긴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 야구팬에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열정적 응원을 보내는데 성적은 늘 실망스럽다. 봄에 확 끓어올랐다가 가을이 되면 차갑게 식는다. “야구의 신은 최고의 팬과 최악의 구단을 부산에 내려줬다”는 말까지 있다.
롯데는 1982년 프로 첫해부터 리그에 참가한 팀이지만 정규리그 1위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984년,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지금껏 우승 트로피를 품지 못했다. 1984년에는 승률 4위 팀이었으나 고 최동원의 오른 어깨를 희생(10일 동안 5경기 40이닝 610개 투구)한 덕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고, 1992년에는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라 ‘업셋’ 우승을 했다.
비단 한국시리즈뿐만이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통계에 따르면 롯데는 2023년까지 리그에 참가한 42시즌 동안 단 13차례만 가을야구에 초대됐다. 31.0%의 확률이다. 물론 10개 구단 중 최저다. 같은 프로 원년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는 42시즌 중 29차례(69.1%)나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제일기획으로 운영 주체가 넘어가기 전(2015년)까지는 일등주의를 앞세워 34시즌 동안은 28차례(82.4%)나 가을야구를 했다. 한국시리즈만 17차례 치렀다. 삼성에 이어 두산 베어스(42시즌 중 25차례·59.5%), 기아(KIA) 타이거즈(해태 시절 포함·42시즌 중 22차례·52.4%)가 뒤를 잇는다.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 확률은 신생 구단들과 비교해도 턱없이 떨어진다. 2023시즌 정규리그 4위에 오른 9구단 엔씨(NC) 다이노스는 72.7% 확률(11시즌 중 8차례)로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1군 입성 첫해(2013년)와 2018년, 2021년에만 가을야구를 못했다. 10구단 케이티(KT) 위즈는 1군 진입 3년 동안(2015~2017년) 꼴찌를 하기도 했으나 9시즌 동안 5차례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재창단한 키움 히어로즈 또한 2008년부터 2023년까지 9차례 가을야구를 치렀다. 56.3%의 확률이다.
가을야구 초대 확률 50% 미만의 구단은 롯데를 비롯해 한화(빙그레) 이글스, 엘지(LG) 트윈스(MBC 청룡 포함)가 있다. 한화는 38시즌 동안 13차례(34.2%), LG는 42시즌 중 18차례(42.9%)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1994년 통합 우승을 마지막으로 우승과 연이 없던 LG는 2023시즌 29년 만에 KBO리그 왕좌를 노린다. 롯데가 많이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우승 적기에 과감한 투자 했지만
포스트시즌 성적(2023시즌 제외)만 놓고 봐도 롯데의 승률은 5할을 밑돈다. 39승42패1무(0.481)를 거뒀다. LG(0.471), 삼성(0.448), NC(0.441), 한화(0.416)보다는 높지만 KIA(0.594), KT(0.571), SSG(SK 시절 포함·0.560), 두산(0.537), 히어로즈(0.492)보다는 낮은 수치다.
흥미로운 것은 관중 동원이다.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 관중은 롯데와 오비(OB·현 두산)가 맞붙었던 1995년에 작성됐는데, 당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에 21만634명이 몰렸다. 야구장 입석이 있던 터라 경기당 평균 3만91명을 불러모았다. 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 역대 최다 관중도 롯데와 관련 있다. 플레이오프 최다 관중은 1995년 롯데와 LG 경기로 경기당 평균 2만8224명(6경기 16만9344명)이 야구장에 찼다. 준플레이오프 때는 2010년 두산과 롯데의 경기가 가장 많은 관중을 모았다. 5경기 13만8천 명으로 경기당 2만7600명이 운집했다. 롯데의 관중 동원 화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물론 다른 구단들과 비교해 가을야구를 치르는 빈도수가 적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 롯데는 2023년에도 ‘가데’(가을에 강한 롯데)가 되지 못했다. 4월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10개 구단 중 가장 승률(0.636·14승8패)이 높았다. 5월까지도 승률은 6할이 넘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저주의 말 같은 ‘봄데’(봄에만 강한 롯데)란 이름만 덩그러니 남았다.
롯데의 부진은 다소 의외였다. 롯데는 2022시즌이 끝난 뒤 공격적으로 자유계약(FA) 선수를 영입한 터였다. 내내 골칫거리였던 포수 포지션을 유강남(4년 80억원)으로 채웠고, 내야를 강화하기 위해 노진혁(4년 50억원)과 계약했다. 한현희(3+1년 40억원)를 영입해 선발 자리도 맡겼다. 팀 내 예비FA 신분이던 박세웅(5년 90억원)도 일찌감치 붙잡았다. 베테랑 신정락, 김상수 등도 영입했다. 우승 적기라는 판단 아래 이뤄진 과감한 투자였다.
그러나 결과가 ‘7위’였다. 결정적 이유는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이었다. 시즌 중반에 댄 스트레일리와 잭 렉스를 퇴출하고, 애런 윌커슨과 니코 구드럼을 대신 영입했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는 없었다. 유강남, 노진혁, 한현희 등도 게임체인저는 되지 못했다. 멀어지는 5강에 래리 서튼 감독은 건강상 이유로 8월 말 중도 사임했다. 시즌 중반 내부 코치진 불화설까지 터져나왔던 롯데였다.
곰 같지만 여우 같은, 노련한 감독 영입
7-10-7-8-8-7. 롯데의 지난 6년간 순위다. 기나긴 암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롯데는 팀을 7년 연속 한국시리즈(2015~2021년)로 이끈 김태형 전 두산 사령탑을 영입했다. 롯데가 다른 구단의 우승 사령탑을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의 선택은 과거를 고려할 때 다소 파격적이다. 롯데는 사령탑 선임에서 ‘과감’보다는 ‘안전’한 길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국내 프런트 경험이 전혀 없던 성민규 단장 영입 때부터 롯데의 변화는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험 부족의 성 단장은 실패했고, 이제 롯데는 경험 많은 현장 감독에 기댄다.
짧은 선수 생활 뒤 은퇴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로만 있던 성 단장과 달리 김태형 감독은 프로선수부터 코치, 사령탑까지 국내 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이다. 곰 같지만 여우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이다. 물론 감독 한 명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팀이 달라질 수는 없다. 김태형 감독 선임은 거인의 진격을 위한 첫걸음이어야 한다. 프런트가 달라지고, 선수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부산의 가을 눈물을 지울 수 있다. 그들이 당당히 ‘롯데 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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