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빠지며 탄력적 병력 운용…이스라엘의 '모듈형 지상작전'[딥포커스]

김성식 기자 2023. 10. 3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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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에 따라 '치고 빠지는' 작전…유연한 운영에 걸프전서 효과 입증
병력손실 줄이고 협상력 높여…美 '외과수술식' 작전도 일부 수용
26일(현지시간)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 근처에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주력 전차가 보인다. 2023.10.27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허를 찔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상대로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개전 이후 연일 가자지구에 공습을 퍼부운 데 이어 27일(현지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했다.

그러나 육·해·공군이 일시에 진격하는 '전면 침공' 대신 소규모 인원이 교전을 치르고 후퇴하는 이른바 '모듈형 작전'(modular operation)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스라엘군이 전술을 선회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Ynet)은 팔레스타인 매체를 종합해 현재 가자지구 북부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스라엘방위군(IDF)이 모듈형 작전으로 하마스 지도부 무력화를 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듈형 작전은 전장 상황에 맞춰 소규모 병력이 적진에 진입했다가 소기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즉시 복귀해 전열을 재정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확한 병력 규모는 IDF 측이 공개하지 않았지만 통상 모듈형 부대는 포병을 주축으로 방공·기갑·공병 등이 합세해 5개 대대 이내로 구성된다. 병력 전개 방식과 작전 목표는 정보기관이 수집한 전황에 달려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황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데다 사단·연대를 구분하지 않고 마치 '레고 블록' 쌓듯 유연하게 병력을 운용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 육군이 제2차 걸프전쟁 때 처음 고안한 이래 각국은 모듈형 부대를 앞다퉈 실전 도입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직후 가자지구 내 지상군 투입을 예고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날한시에 대규모 병력이 들어가는 전면 침공을 예상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민간인 1400명이 하마스에 학살되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스라엘 국내 여론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일 계속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지상군 투입을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여기에 더해 230명의 인질이 하마스에 억류됐다는 점도 이스라엘에 부담이 됐다. 일부 피랍자 가족들은 인질 생환을 방해한다며 지상전을 반대하기도 했다.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시내에 납치된 어린 아이들을 상징하는 곰인형들이 '납치됨'이라는 단어와 함께 어린 아이의 사진을 맨 채 전시되어 있다. 2023.10.26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이에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헤르지 할레비 IDF 참모총장과의 상의 끝에 하마스를 해체하면서도 안전한 인질 구출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목표를 수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양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온 절충안이 바로 모듈형 작전이라는 게 와이넷의 분석이다.

와이넷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의 모듈형 작전이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력을 제고하고 △이스라엘군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며 △결과적으로 확전을 억지하는 등의 장점이 있다고 본다.

먼저 모듈형 작전은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점진적으로 높일 수 있다. 하마스는 지난 17일 가자지구 내 알 아흘리 병원 폭발사건 이후 아랍국들의 지지에 힘입어 국제 여론의 상당한 반전을 끌어냈다.

이후 사기가 바짝 오른 하마스는 이집트·카타르가 중재하는 협상에서 이스라엘 측에 인질 석방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수감자 전원 석방과 가자지구 연료 반입 등을 요구했다. 이스라엘로선 받아 들 수 없는 조건인 만큼 물밑 교섭을 이어가기보다는 새로운 전쟁 양상으로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모듈형 작전은 대규모 침공 대비 이스라엘군의 병력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스라엘군은 현재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 북부 가자시티에 공세를 집중하며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수시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다수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1마일(1.6㎞) 단위가 아닌 100야드(91m)씩 진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점진적 접근법'(gradual approach)으로 이스라엘군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가전을 최대한 피하면서도 땅굴 곳곳에 매설된 부비트랩도 단계적으로 해체해 나갈 수 있다. 원활한 병력 교대와 부상자 치료 역시 가능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2023.10.18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군은 이러한 모듈형 작전을 통해 기존에 원했던 대로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전개하면서도 전면 침공이란 오명을 피할 수 있다. 앞서 WP는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 역내에서 확전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스라엘 측에 자제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의 지상 공격이 더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를 낳아 같은 아랍 세계를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항공기를 통한 '외과수술식(surgical) 작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군사 목표물에 대한 표적 공습을 특징으로 하는 이 작전은 미국이 2017년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로부터 이라크 모술을 탈환할 때 사용한 바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 지도부는 모술과 가자지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며 지상 작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미군이 항공 전력만으로 모술 탈환에 성공한 건 이라크 내 쿠르드·시아파 민병대가 IS와의 지상전을 대신해 줬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가자지구엔 이스라엘에 우호적이거나 하마스에 적대적인 민병대가 전무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압력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표적 공습과 소규모 지상군 전개를 병행하는 모듈형 작전을 채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지상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론 침공이 아니라는 식의 외줄타기가 가능하다. 실제 이스라엘군은 27일 이후 '전쟁 2단계 진입'을 선언하고 가자 북부의 일부 거점을 장악했음에도 공식적으론 '지상전 개시'란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군의 모듈형 작전은 진격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전쟁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8일 "전쟁의 두번째 단계를 열었다. 우리의 살인적인 적을 파괴하겠다"면서 국민들에게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다.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로트에서 포착된 폭격당하는 가자 지구의 모습. 202.10.30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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