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근, 기사단에서도 사자후 토해낼까?

김종수 2023. 10. 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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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오세근(36‧199.8cm)은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안양 정관장 팬들에게 가슴 아픈 이름이 됐다. 영원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을 것이다는 기대와 달리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놓고 자웅을 겨뤘던 경쟁팀 서울 SK로 유니폼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광활한 인삼밭을 내달리던 숫사자에게 생소한 표식이 찍힌 투구와 갑옷이 씌여졌다.


원하지않았던 이적이었다. 안양에서만 11년을 뛴 오세근은 원클럽맨으로 남길 바랬다. 팬들도 안양을 떠나는 오세근은 상상하지 않았다. 팀에서는 당연히 오세근이 남을 것으로 알았는데 그런 방심은 악재로 작용했다. 그로 인해 세심함이 부족했던 것. 사자왕은 마음을 다쳤다. 최소한의 명예조차 지켜주지 않는 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선택을 해야만 했고 결국 기사단의 손을 잡았다.


안양 팬들은 절망했다. 그간 팀에서 프랜차이즈급 스타들을 놓친 것이 한 두번은 아니었지만 오세근의 이적은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김태술(은퇴), 이정현, 박찬희, 이재도, 전성현, 문성곤, 김승기 감독 등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들 중 팀에 남아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구단의 잘못인지 서로간 합이 안 맞았던 탓인지 떠날 때가 되면 여지없이 결별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그러한 과정에 내성이 생긴 팬들조차도 오세근의 타팀행은 쉬이 예상하지 못했다. 은퇴한 양희종과 함께 안양의 상징이자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인물 0순위였기 때문이다. 안양에서 남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식을 할 줄 알았다. 때문에 오세근의 SK 이적이 발표되었을 때도 쉬이 믿지 않았다. 아니, 우아한 거짓말이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세근이 안양에서 이룬 업적은 대단하다.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안양 유니폼을 입은 후 4번의 우승을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정규시즌 MVP 1회, 챔피언 결정전 MVP 3회 수상의 신화를 남겼다. 김주성이 원주 산성을 쌓아올린 것처럼 오세근은 안양성채를 만들고 지켜낸 낸 일등 기술공이자 장수였다.


어둠의 적막을 깨는 해가 떠오르고 적군의 출현을 알리는 그림자가 안양성채 쪽으로 기울어도 팬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난 11년간은…, 이유는 단순했다. 안양의 명장 오세근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든든하게 선봉에 서서 사자후를 토해내며 기선을 제압했고 큰 경기에서 유독 강한 모습을 과시했다. 그와 함께라면지지 않는다! 오세근에 대한 팬과 동료들의 믿음은 오랜 세월 안양을 지켜온 가장 큰 힘이었다.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열정이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라면 오세근은 누구보다도 열정이 뜨거웠던 선수다. 다치지만 않는다면, 건강만 하다면..언젠가부터 그에게 지겹도록 따라붙는 말이다. 빅맨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신장이지만 파워, 테크닉, BQ 등 다른 부분의 우위를 앞세워 중앙대학교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서장훈, 김주성 등의 뒤를 이을 기둥으로 불렸다.

 


다소 늦게 농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완성형 빅맨으로 평가받을 만큼 재능 자체부터 남달랐다. 하지만 그러했기에 많은 이들이 그에게 의지했고 휴식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이는 고스란히 과부하로 이어졌고 신인 시절부터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는 등 부상으로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과 혹사가 이어지는 동안 오세근은 많은 것을 잃었다. 운동능력은 신인 시절부터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짧고 굵게 커리어를 마치는 듯 싶었다. 설사 길게 가더라도 오랫동안 정상에서 군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는 명장 오세근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언월도를 휘두를 힘이 떨어지면 무게를 줄여 장검으로 바꿔잡아 싸웠고 근거리에서의 반응속도가 예전같지 않다고 느끼자 장창을 들고 거리를 확보해 적을 위협했다.


초창기에는 잘 잡아보지도 않던 활도 이제는 명궁 소리를 들을 만큼 잘 쏜다. 시대의 흐름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을 것 같은 괴물 빅맨이었지만 생존을 위해 아니 이기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잘 맞춰갔다. 농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노장이 되어서도 팀의 중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결과는 과정의 증명이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행보였다.


어떤 면에서 오세근에게 SK행은 개인에게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는 분석이다. 올시즌 정관장은 지난 시즌 통합우승의 주역이 대거 사라진 상태다. 수비장군 문성곤은 자신의 재능을 수원으로 옮겨갔으며 벤치에 앉아있기만 해도 힘을 주던 정신적 지주 양희종 또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정했다.


돌격대장 변준형은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상무로 입단한 상태다. 리그 최고의 득점머신중 한명인 오마리 스펠맨(26‧206cm)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매시즌 행보를 예측하기 힘든 시한폭탄같은 존재다. 건강한 몸 상태로 경기에만 집중한다면 그만한 선수도 많지 않겠지만 그게 또 쉽지 않다. 어르고 달래고 관리까지 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인물이다.


만약 오세근이 팀에 남아있었더라면 코트 안팎에서 신경쓸 것이 한두개가 아니었을 것이다. 현재 스펠맨이 부상으로 빠져있는 점을 감안 했을 때 초반부터 과도한 짐이 양어깨에 올려졌을 공산이 크다. 반면 SK에서는 그런 부담이 없다. 리그 최고의 선수 자밀 워니(29‧199cm)를 주축으로 김선형, 오재현, 안영준(전역예정), 허일영, 최부경 등 좋은 선수들이 많은지라 우선은 적당히 묻어가는게 가능하다.


전희철 감독 또한 “워낙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라 시간이 지나면 제 몫을 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다. 오세근으로서는 컨디션, 몸관리 등에 충실하면서 순위 다툼이 치열해질 시점 혹은 플레이오프 등에 맞춰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승청부사로 그를 데려온 SK 역시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다. 오세근이 전해야 할 베테랑의 목소리는 우승이기 때문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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