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몸통 뒤흔든 美 의회[뉴스와 시각]

김남석 기자 2023. 10. 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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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더독'(wag the dog)이라는 표현이 있다.

꼬리가 개(몸통)를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된 비정상적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강성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미는 조던 위원장에게 반기를 든 같은 당의 마리아넷 밀러 믹스 의원 등 중도온건파 의원과 가족들을 공격·협박하는 모습도 이른바 '개혁의딸'(개딸)의 공세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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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왝더독’(wag the dog)이라는 표현이 있다. 꼬리가 개(몸통)를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된 비정상적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 의회 234년 역사상 최초로 케빈 매카시 전 의장이 해임된 후 공화당과 미 의회가 20명 남짓 강경파에 줄곧 끌려다닌 22일간의 블랙코미디를 보며 계속 머릿속을 맴돈 말이기도 하다. 첫 장면은 맷 게이츠 의원이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정지)을 막기 위해 45일 임시예산안을 초당적으로 처리한 중도 성향의 매카시 전 의장에 대해 해임안을 내며 시작된다. 이후 게이츠 의원을 비롯한 초강경파 8명이 자당 소속 의장을 내쫓는 안건을 주도했고, 진영 정치에 눈먼 민주당이 상대 당의 자중지란과 그에 따른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려 몰표로 힘을 보탰다. 결과는 찬성 216표, 반대 210표 가결이었다. 매카시 전 의장 탄핵에 찬성한 8명은 공화당 전체 의석수(221명)의 3.6%에 불과했지만, 공화당이 원내 과반을 불과 4석 웃돌기 때문이다.

후임 의장 선출과정에서도 공화당은 강경파의 막가파식 행동에 줄곧 끌려다니는 장면을 보여준다.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의장 후보로 선출됐지만 10% 남짓 강경파의 ‘묻지 마 반대’에 의결정족수(217표)를 채울 방도가 없자 하루 뒤 사퇴했다. 뒤이어 당내 강경파 모임 ‘프리덤코커스’의 초대 회장을 지낸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이 의장 후보로 지명되자 모처럼 중도온건파가 반기를 들어 3차례 본회의 표결 끝에 낙마시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세 번째 의장 후보 톰 에머 원내 수석부대표마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가세한 강경파 반발에 선출 4시간 만에 물러나자 당 주류 중도온건파는 결국, 강경파가 미는 강경 보수 성향 마이크 존슨 의원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당선이 보장되는 지역구에 극우·극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후원금까지 받는 강경파에 비해 중도온건파는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 줌 강경파에 휘둘리는 미 하원 안팎의 모습은 여의도 국회와도 오버랩 됐다. 게이츠 의원 등이 의장 해임사태 다음 날 극우 성향 ‘트럼프 책사’ 스티브 배넌의 팟캐스트 스튜디오로 달려가고, 배넌이 이들을 추켜세우며 청취자에게 후원금 기부를 독려하는 모습은 왠지 낯익다. 강성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미는 조던 위원장에게 반기를 든 같은 당의 마리아넷 밀러 믹스 의원 등 중도온건파 의원과 가족들을 공격·협박하는 모습도 이른바 ‘개혁의딸’(개딸)의 공세를 연상시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에머 원내 수석부대표를 공격하는 데 사용한 ‘리노’(RINO·무늬만 공화당원)라는 표현은 ‘수박’(겉은 더불어민주당, 속은 국민의힘)과 똑 닮았다. 여야 강경파가 당의 얼굴·목소리를 장악하고 상대 당은 물론 같은 당내에서도 조금만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규정하고 극한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대화나 협상, 양보라는 개념은 사전 속 단어가 된 지 오래다. 대니얼 지블렛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정치는) 당파적 소수가 일상적으로 다수를 저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며 “이들은 민주주의 붕괴의 숨은, 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 정치도 다르지 않다.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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