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노동력이 ‘아일랜드의 자석’… 글로벌기업 끌어당겼다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3. 10. 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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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아일랜드 수교 40주년 ◆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 첫 단독 인터뷰]
틱톡·우시바이오 등 기업 유치
中과 경제협력 강화하면서도
의존도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
2017년 38세 최연소 총리 올라
인도계로 최초의 이민자 출신
작년 12월부터 총리 다시 맡아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일랜드는 2013년 구제금융 딱지를 뗐다.

3년간 공무원을 줄이고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한 아일랜드는 그 후 10년간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꿨다.

당시 24%이던 법인세율을 12.5%까지 과감히 낮춘 덕분에 메타·에어비앤비·엑스(옛 트위터) 등 신규 정보기술(IT) 공룡이 앞다퉈 더블린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이 투자를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아일랜드 경제가 부활한 것이다.

최근엔 코로나19 부담으로 유럽의 많은 나라가 재정적자에 허덕이지만 아일랜드는 혼자 웃고 있다. 법인세수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재정흑자가 80억유로에 달해 2006년 이래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유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난민 사태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코로나19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물가까지 총체적 위기를 겪는 반면 아일랜드만은 외풍에도 끄떡없이 견디고 있는 셈이다.

오는 11월 2일 한국을 찾는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원래 아일랜드의 국민성이 강한 회복력”이라며 “특히 우리 경제 모델이 잘 정립되고 성공적인 친기업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친기업 정책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규제, 조세 환경, 건전 재정 관리,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기술에 대한 상당한 투자 등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버라드커 총리는 과거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현대 개방경제(modern open economy)’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IT 기업이 아일랜드로 몰려오면서 외부 변수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는 “글로벌 기업이 아일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낮은 법인세 때문만은 아니다”며 “기업들은 아일랜드 노동력에 끌리고 있다. 이들은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고도로 숙련된 능력을 갖춘 데다 다국어까지 구사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는 대학·대학원 이상 유학생에게 2년간 워크퍼밋(외국인 취업 허가)을 허용해 글로벌 IT 기업으로 취업하려는 외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가령 1980년 일찌감치 아일랜드에 진출한 애플은 현재 600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100여 개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여든 인재다.

아일랜드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이들 기업은 고학력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노동 인구가 젊어졌다.

대학 이상 고등교육 이수자 45.8%…브렉시트 반사 이익도
아일랜드는 유럽에서도 학력 수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15~64세 인구 중 대학 이상 고등교육을 이수한 비중(2022년 기준)은 유로 지역 평균이 31%인 데 반해 아일랜드는 45.8%나 된다. 아일랜드보다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구 비중이 높은 나라는 룩셈부르크(46%)뿐이다. 여기에 브렉시트에 따른 반사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버라드커 총리는 “아일랜드가 EU 내 유일한 영어 사용국이 됐기 때문에 많은 글로벌 기업이 EU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아일랜드를 활용하고 있다”며 “기존에 진출한 회사들이 탄탄한 기반을 형성한 데다 일관성 있는 비즈니스 환경, 비용 경쟁력, 안정적인 법 체계 등도 외국 기업이 아일랜드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내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합의에 따라 법인세율이 15%로 오른다. 글로벌 IT 기업으로서는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로 실적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법인세까지 추가로 더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기업이 투자나 고용을 줄이면서 법인세 인상에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버라드커 총리는 “아일랜드의 조세 정책은 변화하는 디지털 경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EU와 OECD 차원에서 만든 조세 프레임워크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랜드가 한국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미국 글로벌 IT 기업에 세수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데 대한 부담으로 풀이된다. 이미 한국에는 아일랜드 회사가 120개 이상 진출해 있고 2015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된 이후 아일랜드의 한국 수출 규모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아일랜드 기업 중 가장 큰 회사는 액체생검 기업 ‘아이콘(ICON)’으로 국내 바이오 제약 업체들의 신약 개발을 위한 정밀 생검을 담당한다. 최근 한국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액체생검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일랜드에 진출한 우리 기업으로는 SK그룹이 2017년 글로벌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아일랜드 공장(현 SK바이오텍 아일랜드)을 인수한 사례가 손에 꼽힌다.

[더블린 한예경 글로벌경제부장]
“中과 손잡지만 할 말 한다” 실리주의 돋보여…틱톡·우시바이오 등 기업 유치
중국 문제에 관해 유럽연합(EU) 국가 사이에서도 온도 차가 심하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겪은 나라는 강경 대응을 주장하지만 반대하는 국가도 있다. 자유로운 무역을 지향하는 아일랜드는 특히나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이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중국과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일랜드는 규칙 기반의 세계 무역 시스템을 지지한다”며 “하지만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일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EU 국가와 공조할 분야를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도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지난 6월 EU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계속 협력하기는 하지만, 불확실성과 경쟁 시기에 더욱 완벽하게 대비하고 경제 회복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이게 소위 ‘디리스킹(derisking)’이다. 이는 우리 경제를 중국 경제와 분리하려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버라드커 총리는 “디리스킹이란 우리의 가치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적이고 체계적인 회복력을 갖춰나가는 것”이라며 “경제·외교·문화 관계에서 중국과 등을 돌리려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대중국 관계에서 실리주의 노선을 택한 아일랜드는 2021년 틱톡을 유치해 일자리 4000개를 만들어냈고, 중국 최대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우시바이오로직스의 생산 기지도 조성했다.

한편 이러한 경제협력에도 아일랜드가 자국 및 역내 안보를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이 상당하다. 아일랜드는 다른 나라와 군사적으로 동맹 관계를 맺지 않는 ‘군사적 중립국’이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호주 등이 나토와 더욱 긴밀해지는 가운데 나토 내 역할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버라드커 총리는 “아일랜드가 군사적 중립국이란 건 우리가 다른 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정치적으로 중립이라는 말이 아니다”며 “이 원칙은 오랫동안 아일랜드의 독립적인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기둥이었고, 이를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버라드커 총리는 “이런 맥락에서 아일랜드는 나토 가입 계획은 없지만 현재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 작업 중”이라며 “한국도 올해 초 비슷한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일랜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나토와 파트너십을 맺어 군의 상호 운용을 비롯한 기존 협력 분야는 물론이고 사이버 및 해양 안보에서도 협력을 모색하려고 한다”며 “한국을 포함해 의견이 유사한 다른 나라와 함께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44세·의사 출신 젊은 총리 … 장관들도 3040 대거 발탁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

지난해 12월부터 총리직을 맡고 있는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올해 44세로 유럽에서도 상당히 젊은 리더에 속하지만, 정치 경력만 놓고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총리직만 2017~2020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임기다. 앞서 2017년 사회보장부 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그는 집권 통일당의 새로운 당수로 선출되면서 아일랜드 역사상 최연소(38세) 신임 총리이자 최초의 이민자 출신 총리가 됐다.

버라드커 총리는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도 뭄바이 출신 의사, 어머니는 영국인 간호사다. 그는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뭄바이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2010년 아일랜드에서 전문의가 됐다. 코로나19 초기 의사 출신 총리로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로 보건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버라드커 총리는 연정 파트너인 부총리를 제외한 각 부처 장관을 대부분 30·40대로 채우면서 젊은 정부를 부각하고 있다. 내각 13개 부처 장관 중 50세 이상은 4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1970~1980년대생이며 37세 장관도 2명이나 된다.

2020년 총선에서 제1당 지위를 잃은 통일당은 공화당·녹색당과 함께 3당 연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총리직은 공화당과 통일당이 교대로 수임하도록 정했는데, 공화당 당수이자 현 부총리 겸 외교장관인 미할 마틴이 2022년 말까지 총리직을 수임한 뒤 버라드커 총리가 물려받았다. 버라드커 총리의 이번 임기는 2025년 2월까지다.

[더블린 한예경 글로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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