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침묵하는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울림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3. 10. 3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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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CJ ENM

재심(再審). 한 번 심사했던 것을 다시 심사한다는 의미로, 법률 용어로는 확정 판결로 사건이 종결되었으나 중대한 잘못이 발견되어 소송 당사자가 다시 청구하여 재판을 하는 것을 뜻한다.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써보지 않은 단어일 것이다. 영화 '소년들'의 소년들은 다르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 사건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세 명의 소년은 감옥에 갇혔고, 출소 후에도 오랜 시간 살인자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조작된 사건이었고 진실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실화다.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실화를 줄기로 극적인 장치들을 첨가해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인 황준철(설경구) 반장. '미친개'라는 별명이 있는 집요한 경찰 황준철은 사건 이듬해인 2000년 완주경찰서 강력반 수사반장으로 부임한 뒤 우리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는다. 의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수상한 점을 발견하며 사건을 바로잡으려는 황준철에게, 사건의 담당자였던 엘리트 경찰 최우성(유준상)을 위시로 한 조직적인 방해가 가해진다.

황준철은 대표적인 또 다른 재심 사건인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진두지휘했던 황상만 형사를 모티프로 한 허구의 인물이다. 영화는 황준철을 극을 이끄는 인물로 내세우면서 사건이 벌어진 1999년에 사건의 재수사를 벌이던 2000년과 재심이 이루어지는 2016년을 오가는 구성으로 단조로움을 피하는데, 이때 황준철을 연기한 설경구의 호연이 단연 눈에 띈다. 세월의 간극을 외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혹독한 체중 감량이 주효했고, 무수히 많은 감정을 담은 눈빛이 울림 있게 다가온다. 수사에 있어 투박함은 있을지언정 진실에 대한 의지가 있었으나 조직적인 방해에 의지를 꺾이고 좌천당해 오랜 시간 외지를 떠돌다 정년을 앞두고 컴백한 황준철은, 은연중 설경구의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공공의 적'의 강철중 형사를 떠올리게 만들며 관객에게 공감을 산다. 

사진=CJ ENM

황준철과 대적하는 인물인 최우성은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무고한 소년들을 범인으로 모는 빌런의 포지션이지만 유준상의 다소 튀는 연극적인 연기 톤으로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아 아쉬움을 산다. 그러나 '소년들'은 최우성과 같은 몇몇의 빌런에게만 책임을 오롯이 묻지 않는지라 그에게 무게중심이 쏠리진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최우성이 누차 강조하는 '조직'의 체계적인 사건 은폐에 화살을 겨눈다. 사건의 진실을 알 기회가 왔음에도 조직이라는 시스템은 황준철의 재수사를 '조직에 똥칠하는 짓'이라 규정한다. 정작 그 조직의 존재 이유는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데 있음에도 말이다. 

억울하게 진범으로 몰린 소년들을 연기한 김동영, 유수빈, 김경호와 진짜 사건의 진범으로 등장하는 배유람과 서인국, 사건의 유족이지만 사건의 진실을 알고 소년들을 돕기 위해 나서는 윤미숙 역의 진경, 황준철을 따르는 후배 형사 박정규 역의 허성태와 묵묵히 남편을 지지해주면서 깨알 같은 생활 연기로 웃음을 주는 황준철 아내 역의 염혜란, 그외에도 정원중, 박철민, 조진웅, 박원상 등 여러 배우들이 영화에서 제 몫의 역할을 다한다. 특히 출소 후 억울함이 온몸에 체화된 소년을 연기한 김동영의 눈빛이 시선을 끈다. 

사진=CJ ENM

'소년들'의 결말은 누구나 안다. 오랜 시간을 돌아왔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 현실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세 명은 각각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복역했고, 2015년에야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 2016년에야 대법원에 의해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다. 대표적인 오심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은 언론과 방송을 통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건이기도 하다. 영상화했을 때 임팩트가 약할 수 있음에도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관록의 정지영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많이 알려진 사건이지만 한 번 더 잘 들여다보자. 세 소년이 감옥을 가는데 우리가 동조한 게 아닌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후반 법정신은, 사실 조금 촌스럽다. 담담하게 그려내도 충분할 것 같은데, 힘을 준다. 웅장하게 곁들어지는 BGM도 촌스러움에 화력을 더한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소년들'은 정지영 감독이 말한 의의를 담아내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영화 엔딩에서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경찰이나 검찰은 누구도 없다는 자막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드러낸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실화는 1999년의 일이지만, 억울한 일은 2000년대에도, 2020년대에도 계속 생겨난다. 사건은 벌어질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나서서 진실을 밝히지 않고 방관하는 사회가 계속된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모두가 다 아는 사건이지만, 여전히 '소년들' 같은 영화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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