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장희수냐, 재생능력자 병아리

한겨레21 2023. 10. 30. 10: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암탉 참이가 11개의 알을 품은 지 21일 만에 병아리가 부화했다.

밟힌 병아리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는데, 참이를 내쫓고 확인해보니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혹시 집에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외출할 때도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며 애지중지 돌봤다.

보이지 않던 꼬리는 삐쭉삐쭉 자라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랐고, 덩치도 커져서 한 손 안에 가득 찼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농사꾼들]【전남 곡성】 병아리 복숭이 부목해주고 애지중지 보살폈더니 2주 만에 다 나았네
병아리 복숭이가 어깨 위에서 놀고 있다.

집에서 키우는 암탉 참이가 11개의 알을 품은 지 21일 만에 병아리가 부화했다. 알 11개 중에서 다섯 생명이 태어났다. 생명 탄생은 경이로웠다. 어미와 병아리는 안팎에서 알을 깨주며 세상으로 나왔다. 몸은 갓 샤워하고 나온 듯 물기로 젖어 있다. 걷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던 작은 생명체는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땅을 딛고 일어선다. 붓다인가!

참이, 이 녀석이 병아리들을 잘 보살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도 예민해져서 조금만 다가가도 흥분해 병아리를 밟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하루는 병아리를 밟은 것도 모르는지 오랫동안 밟고 또 밟았다. 밟힌 병아리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는데, 참이를 내쫓고 확인해보니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밀양에서 닭을 키우던 시절, 담비의 장난거리가 되어 죽은 수탉 냉이. 냉이는 병아리 때부터 한쪽 발목이 꺾여 있었다. 어찌할 줄 몰라 그렇게 내버려두었는데 다 크고 나서야 알았다. 병아리 때 유연한 뼈를 잘 잡아주면 다리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또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다리 부러진 병아리를 집에 데려 와서 면봉을 잘라 부목을 대주고 붕대로 감았다. 큰 상자에 집을 만들어줬다. 바닥에 왕겨를 폭신하게 깔고 작은 찻잔에 물과 먹이를 넣어줬다. 빠른 회복을 위해 달걀을 삶아서 주니 그 많은 걸 금방 해치웠다. 혹시 집에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외출할 때도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며 애지중지 돌봤다. 나흘쯤 지났을까. 다친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 세상에, 케이(K) 마블 <무빙>의 재생능력자 장희수(고윤정)가 여기 있구나.

그 뒤로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병아리는 집에서 함께했다. 이름은 복숭이. 복숭이는 우리를 잘 따랐다. 어딜 가도 졸졸. 배에 앉아 놀고, 어깨에 앉아 놀았다. 종종 집 앞 밭에서 산책을 시켜줬다. 복숭이는 다친 발로도 흙을 열심히 뒤집으며 벌레를 잡았다. 나 같으면 더 다칠까 걱정하며 집에 박혀 있었을 텐데.

복숭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보이지 않던 꼬리는 삐쭉삐쭉 자라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랐고, 덩치도 커져서 한 손 안에 가득 찼다. 다리와 몸을 연결하는 곳은 어느새 붙었고, 웅크려 딛던 발도 펴서 고정해주니 며칠 새 금방 회복했다. 이젠 상자 안도 답답했는지 자주 튀어나와 놀라게 했다. 보살핀 지 2주가 되자 상자 모서리를 횃대 삼아 올라섰다. 아쉽지만 어미 품으로 돌려보낼 시간이다.

늦은 밤, 참이가 자는 사이 그 앞에 복숭이를 두었다. 어둠 속에 복숭이가 삐악삐악 울자 참이는 놀랍게도 품을 열어줬고 복숭이는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잠깐 떨어져 지냈지만 자기 자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복숭이도 어미 품을 기억했다.

다음날, 복숭이를 만났다. 나를 기억할까. 복숭이는 어미와 다른 병아리들과 신나게 놀고 있다. 내가 가도 정신없이 먹이를 먹는다. 너와 나의 추억이 쉽게 사라지는구나 하던 찰나, 복숭이는 천천히 나에게로 왔다. 원래처럼 내 무릎으로 올라왔고, 털을 골랐다. 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웠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