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50%와 세금 30%인 나라, 당신의 선택은 [세상읽기]

한겨레 2023. 10. 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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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영준 I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학생들에게 묻는다.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는 나라와 30%를 내는 나라 중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당연한 질문에 학생들은 30%를 내는 쪽이라 답한다.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세금을 30%만 내는 나라에서는 국가의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이 충분하지 않아 개인연금이나 실손/암보험 등에 가입해야 하고, 자녀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효과가 불분명한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50%를 내는 나라에서는 별도로 시장에서 연금이나 보험을 살 필요 없고, 사교육비를 쓰지 않아도 된다. 대학교육도 무료다. 다시, 어느 국가에서 살고 싶은지 묻는다. 많은 학생이 답을 바꾼다.

학생들에게 정부 부채 국가 비교 그림을 보여준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그림의 제일 오른쪽에 일본(255%)이 있고, 다음에 몇몇 남부유럽 국가들이 자리하고, 미국이 144%로 다음이다. 반면, 대표적 복지국가들인 독일은 65%, 스웨덴과 덴마크는 43%, 35%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이 당황한다. 유럽 복지국가들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복지 지출을 많이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더 많이 지출하는 국가의 부채 수준이 훨씬 더 낮을 수 있는가?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간단한 답 하나는 부담률에 있다. 덴마크, 스웨덴, 독일의 조세·사회보장 부담률(2020년)은 각각 국내총생산 대비 47%·43%·37%로, 31%·26%에 불과한 일본과 미국보다 훨씬 높다. 즉, 국민이 더 많이 부담하니 국가의 부채 수준이 낮을 수 있다.

그러면, 이들 나라 국민은 많은 세금을 강요받고 있을까? 민주주의 지표나 행복 관련 지표들을 보면, 이 국가들이 항상 제일 우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국제사회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중산층 세금이 높다고 응답한 비율은 일본과 미국이 각각 50%와 54%인데 스웨덴, 덴마크, 독일은 29%, 31%, 48%에 그쳤다. 정부 지출을 삭감하자는 데 동의하는 비율 역시 일본과 미국이 60%대 중반인데, 스웨덴과 덴마크는 약 40% 전후였고, 독일은 54%에 그쳤다.

정리하면, 작은 복지국가들에서는 국민 부담 수준이 높지 않지만, 국민은 부담이 크다고 생각하며 정부 지출을 더 삭감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이 비합리적인가? 그렇지 않다. 조세 말고도 사적으로 매달 부담할 것들이 많으니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증세에 동의하기 어렵다. 한편, 고령화 등으로 정부 돈 쓸 곳은 늘어나는데, 증세는 하지 못하니 부채가 쌓인다.

일본이 특히 그렇다. ‘잃어버린 10년’을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 정부 부채는 지금 우리 수준인 국내총생산의 60%가량이었다. 고이즈미 총리가 취임했던 2001년 전에 정부 부채 비율이 이미 100%를 넘어섰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내세웠던 그의 내각은 흑자재정을 공언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개혁이 막을 내릴 즈음 부채 비율은 200%에 이르렀다. 국민과 국가에 돈이 없었을까?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거나 얻을 생각이 없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성장우선과 선별복지를 지지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가 그 결과를 이용해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무능을 재확인시키는 것이다. 2010년 전후만 해도 달랐다. 많은 이들이 ‘헬조선’에서 경험하는 위험들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의 확대를 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그리고 코로나19를 경험하며 다시 국민은 마음을 닫았다. 정치적 수사는 화려했지만, 변화는 미비했다. 국가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결국 개인은 미래를 위해 보험을 구입하고, 사교육비를 더 지출했으며, 집 한채 사느라 빚에 허덕이게 됐다.

지금은 어떤가. 그런 사회적 병리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중요한 정책은 안정성을 확보한 엘리트들만의 논의로 끝나고, 국민이 느끼는 조세 효용성은 희미하기만 하다.

미셸모어의 책 ‘미국은 왜 복지국가 만들기에 실패했나’는 ‘감세국가’ 미국이 “시민 다수에게 세금 부담과 그 세금을 부담함으로써 받는 혜택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던 자유주의 세력”에서 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한국 역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국민 삶 변화에 대한 비전도 정책 능력도 결여된 정당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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