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호흡으로 나아가는 배우 이윤지의 꿈

서울문화사 2023. 10. 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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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지의 꿈은 멈춘 적이 없다. 짧은 거리를 빠른 속도로 완주하려는 대신 자신만의 호흡으로 먼 거리를 바라보며 꿈을 꾸고 이뤄나가는 중이다.
발라클라바 시오르, 코트 쿠메, 웨스턴 부츠 레이첼콕스, 니트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우먼센스>와는 두 번째 커버 촬영이다. 오늘 촬영은 어땠나?

좋은 사진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이 컸다. 잘 나온 것 같다.(웃음) 드라마나 영화 촬영과는 다르게 매거진의 콘셉트에 맞춰 나를 꾸미다 보니 화보 촬영장에서 나도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잘 기억해두려고 한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색감 없이 화이트 위주로 촬영했다. 그런데 문득 지금 촬영 중인 SBS 드라마 <마이 데몬>에 오늘의 스타일링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더라. 색으로 힘을 주기보다 색과 힘을 빼고 강한 느낌의 스타일링으로 캐릭터를 표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작품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되었겠다.

그렇다. 평소에 입지 않는 스타일링을 하다 보니 나의 무드도 바꿔보게 된다.

새로운 작품에도 들어갔지만 올해 유독 배우 이윤지에게 많은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지난 9월에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드림팰리스>에서 연기한 ‘수인’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것 같다.

가성문 감독님이 감독상을 받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작은 영화였고 개봉관도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아 좋은 작품으로 남지 않았나 싶다. 물론 상이 영화에 담긴 모든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애정을 가지고 연기했던 <드림팰리스>의 마무리가 잘 담긴 것 같다. 정말 소중한 작품이었고 한 땀 한 땀 신중히 바느질하듯 임한 영화이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그토록 소중했던 건가?

수인을 연기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수인을 대신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수인을 살아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잘해주고 싶었다. 연기하며 가장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수인의 마음이었다.

<드림팰리스>에는 절대적으로 선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모두 약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내 마음이 많이 쓰였다. 영화가 올해 개봉했는데 좋은 날씨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좀 무거운 마음이 들더라. 이런 마음을 전하며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마주한 관객들과 이상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재미있는 건 무대 인사를 하면 할수록 배우들과도 더 돈독해진다는 거였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장면에 대한 (김)선영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감도 많이 되고. 언젠가 수인과 ‘혜정’(김선영 분)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나 마음을 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무대 인사의 시간도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영광스러운 상이 나에게 주어졌지만 작품을 위한 상이기도 했다.

화이트 이너 톱·트위스트 톱 모두 레호. 스커트 쿠메.

SNS에 촬영장에서의 수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울고 싶을 때 텔레파시 보내라는 멘트와 함께.

아, 이 질문을 받으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 수인은 이상하게 헤어지기 쉽지 않았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쉬웠다. 작품을 마칠 때마다 인물과 헤어지기가 이렇게 늘 힘들다면 배우로서는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헤어진 후에도 안부가 궁금했다. 멀리서라도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수인이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

상은 때론 배우에게 연기라는 길에 대한 확신을 주기도 할 것 같다.

전환점이 돼주길 바라는 마음도 물론 있다. 애정을 가지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연기한 작품으로 상을 받아 더 기쁘기도 했고. 이 상을 계기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수상 소감에서 ‘꿈꾸는 엄마’가 되겠다는 말을 했다. 뭐랄까, 이윤지다운 소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영평상 사회자가 아이가 몇 살인지 물으면서 편하게 소감을 시작했다. 나는 계속 배우로서 잘해내고 싶지만 배우의 인생과 엄마의 인생, 딸로서의 인생 같은 역할이 동시 진행형이다. 하나의 스위치를 켜면 다른 하나의 스위치가 꺼지는 식이 아니라 동시에 돌아가는 거다. 배우로 살면서 여전히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꿈꾸는 엄마가 되겠다는 말로 그런 의미를 전했다.

어디에선가 ‘많은 의미가 있었던 한 해’라는 말을 했다. 어떤 점에서 많은 의미가 있었던 건가?

올해가 데뷔 20주년이었다. 그리고 마흔이 됐다.(웃음) 스물에는 뭔가 아직 어른 같지 않았고, 서른에는 진짜 어른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마흔을 기다리는데 이 또한 뭔가 멋있는 것 같았다. 기대되는 마음도 들었고. 마흔 이후에는 뭔가 더 멋진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자신에게 주는 긍정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무서울 게 많아지는 동시에 무서울 게 없다. 엄마라는 전제 때문인 것 같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서울 것이 없다. 또 아이로 인해 무서울 것이 많고. 아이는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큰다는 생각도 든다.

연기라는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이 있나?

그건 없다. 여전히 20년 전처럼 뜨겁다. 신기할 만큼 비슷한 결로, 그리고 비슷한 강도로 좋다.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패널로도 오랜 시간 활동하고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공감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공감을 잘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건 아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내가 해낼 수 있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시간이 쌓여온 걸 보면 나의 성향과 잘 맞는 역할인 것 같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사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점이 조심스럽지는 않은가?

처음에는 그랬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는 녹화 시간이 방송 시간보다 훨씬 길다. 갑작스레 상대방의 사연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주고 진짜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듣는다. 자연스레 녹화 내내 진짜 마음만이 오간다. 그러다 보면 나 역시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사연을 듣다 보면 어떤 점에서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하고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버킷 해트 리이, 코트 손정완.


배우의 인생과 엄마의 인생, 딸로서의 인생 같은 역할이 동시 진행형이다.
 하나의 스위치를 켜면 다른 하나의 스위치가 꺼지는 식이 아니라 동시에 돌아가는 거다.
배우로 살면서 여전히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꿈꾸는 엄마가 되겠다는 말로 그런 의미를 전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들었던 조언들이 실제 생활에 대입되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말 많다.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10개의 상담 내용을 들으면 그 10개를 모두 수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잘 안 된다.(웃음) 가령 ‘이제부터 아이에게 절대 큰소리 내지 말아야지’라고 마음먹으면 하루는 실천하는데 다음 날이면 와장창 깨지고 만다. 그래도 방향성만큼은 많이 바뀌는 것 같다. 큰소리를 냈다고 크게 망가지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멀리 내다봤을 때 방향성만 맞으면 된 것이다.

배우 이윤지도 워킹맘이다. 워킹맘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오은영 선생님이 내게 늘 하는 말씀이 있다. “괜찮아. 다 잘하고 있어. 아이도 잘하고 있어.” 일할 때면 항상 아이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한편에 있는데 엄마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이도 엄마가 없는 시간에 잘하고 있기 때문에 나만 잘 살면 되는 거다. 지난 방송에서는 ‘모성 벌칙’에 대한 것이 나왔다. ‘여성이 직장에 있는 동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를 말하는데 문득 나 스스로에게도 모성 벌칙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짐짓 ‘아이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을 먼저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 고민에 대해 오은영 선생님은 양육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11월부터는 <마이 데몬>이라는 새로운 드라마도 준비 중이다. 이윤지의 어떤 얼굴을 보게 될까?

쌍둥이 형제의 엄마다.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언제나 아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굉장히 화려한 옷을 입고 강렬하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굽히는 법 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런 센 모습이 배우로서는 일종의 쾌감을 준다. 지금껏 살면서 그런 성향의 캐릭터를 만나면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달까. 늘 미어캣처럼 주변을 신경 쓰는 나와 달리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인물을 재미있게 연기하는 중이다.

이윤지의 2023년은 바쁘게 채워졌을 것 같다. 그럼에도 더 채우고 싶은 것이 있나?

올해는 새로운 의미가 있는 해였다. 부쩍 많이 큰 두 아이를 키우느라 늘 바빴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는데 마흔에 맞춰 이렇게 편해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연말까지의 계획 대신 10년 계획을 세워보는 중이다. 남편에게도 10년 계획을 세워보라고 했다. 왠지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된다.

에디터 : 송정은(패션), 박민(인터뷰) | 사진 : 김외밀 | 헤어 : 최종희 | 메이크업 : 이지영 | 스타일링 : 유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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