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돌보기 위해 수업시간에도 병원에 가는 아이들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고령,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보살피는 아동·청소년은 성장을 위한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족을 돌보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매주 월요일 이에 관한 아이들과 복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말
필자가 교육복지를 위해 학교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생으로,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보호자로 살아가는 아이를 만났다. 어머니는 언어장애와 지체장애를 갖고 있어 아이가 어머니의 곁을 자주 지켜야만 했다. 병원이나 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할 때 아이는 어머니의 외출 준비를 돕고 동행하는 도우미이자 수어통역사의 역할을 했다. 이런 일상 속에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등교하지 못하는 날도 생겼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아동이 흔치 않을 것 같겠지만, 사실 이 아이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수많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여러 학교를 다니다 보면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중증질환, 장애가 있는 부모 또는 조부모 등을 돌보는 이른바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실제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할 것 없이 가정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시간을 돌봄에 할애하고 있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앞서 언급한 아이처럼 학교생활과 함께 밥하기, 빨래하기, 동생 돌보기, 의사소통 돕기(수어통역) 등과 같은 돌봄을 병행하면서 사는 아이들이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의 학교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상을 골라 보라면 '병원 동행'과 '생계 활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몸이 불편한 부모나 조부모의 병원 진료 시 법정 보호자 동행이 필요하면, 아동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향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가족을 돌보기 위해 아동이 병원에 동행하는 것은 출석으로 인정되지 않아 결국 결석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울러 어느 정도 성장한 고등학생 중에서는 가족돌봄을 위해 생계 현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경우도 있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밤늦게까지 일을 해 피로가 쌓여 출석에 문제가 생기거나,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다가 결국 자퇴나 유예 등 학업을 중단하는 아이들도 존재한다.
학업과 돌봄을 병행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고,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의 가족돌봄에 대한 '인정 결석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가족의 질병, 사고, 노령 등으로 인해 가족돌봄이 필요한 근로자에 대해 휴가, 휴직, 근로시간 단축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가족돌봄 상황에 놓인 아동·청소년에게도 출석 등에 불이익을 주지 않을 제도를 마련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도 '학업중단 숙려 제도' 등과 같이 아이들의 학업중단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도움과 제도적 마련이 현재 가족돌봄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학교는 아동이 사회적응을 배우는 장이자 성인기 삶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부양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사는 아이들이 보통의 또래들과 같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일은, 이들이 성장을 위한 오늘의 시간을 찾고 스스로 슬기롭게 앞날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학업과 가족돌봄을 병행하고 있을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이 미래를 향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이 확산되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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