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서쪽 지선 끝자락 히오스섬에서 그리스를 다시 본다 [기고]

이정일 주그리스대사 2023. 10.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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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서부 해안으로부터 10㎞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섬은 제주도 절반 크기로서 5만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작은 섬이지만 그리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해운 분야에선 이 섬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스 해운의 40% 정도를 그리스 전체 인구의 0.5%에 불과한 히오스 출신 선주들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세계 해운의 약 10%를 이 섬 출신 선주들이 감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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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대형 선박 수주 '인연'… 양국관계 순풍 지속되길
이정일 주그리스대사

(히오스=뉴스1) 이정일 주그리스대사 = "서양문학의 태동을 알린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저자 호메로스의 출생지인 그리스 '히오스'섬을 아시나요?"

튀르키예 서부 해안으로부터 10㎞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섬은 제주도 절반 크기로서 5만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작은 섬이지만 그리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해운 분야에선 이 섬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스 해운의 40% 정도를 그리스 전체 인구의 0.5%에 불과한 히오스 출신 선주들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선주협회에 따르면 그리스는 작년 기준으로 세계 해운의 21%를 점유한 최대 해운국이다. 세계 해운의 약 10%를 이 섬 출신 선주들이 감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 10대 선사 중에 5개사 선주가 히오스 출신이다.

유독 이 섬에서 유력 선주들이 다수 배출된 것은 왜일까. 히오스에서 만난 해운회사 사장의 설명은 명쾌했다.

동서양 교류를 이어온 실크로드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 대륙으로 가기 위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오면, 거기서부터 에게해 연안 지역을 잇는 지선(支線) 끝자락에 히오스섬이 있다. 당연히 여기서부터 남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지역까진 뱃길로 이어지기에 일찍부터 이 섬 주민들은 항행에 밝았다.

또 척박한 바위산과 물 부족으로 곤궁했던 주민들은 바다를 개척하는 데서 내일을 열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탐험에 앞서 1474년경 이 섬에 와 항행기술을 습득하고 선원들을 고용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섬의 선주 중 선장 출신이 많은 이유다.

항행은 고대부터 바람에 안주했으나, 이 섬은 19세기 말 증기기관 도입에서도 한발 앞섰다. 이는 히오스의 해운업계 우위로 연결됐다.

그리스 국기. ⓒ AFP=뉴스1

이 섬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이 섬 출신 선주(리바노스)가 1970년대 초 대형 선박 건조 경험이 일천했던 우리나라 조선사에 최초로 유조선 2척을 발주했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처음 대형 선박을 수주한 것이다.

그리스 최대 선사 안겔리쿠시스 그룹도 이 섬 출신이다. 이 그룹이 우리나라 3대 조선사 중 한 곳에서만 발주한 선박이 지난 30년간 무려 110여척에 이른다. 고향 히오스에 항해학교를 세워 선장 배출의 전통을 잇고 있는 차코스 그룹은 100척 이상 선단에서 80척 이상을 우리나라 선박으로 채웠다.

한 조사에 따르면 그리스 선주가 보유한 5700여척 가운데 한국 조선사가 건조한 선박이 1900척이 넘는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9일마다 1척씩 그리스에 선박을 납품한 셈이다. 이로써 그리스는 세계 1위 해운 강국이, 우리나라는 조선 강국이 됐다.

이제 해운·조선업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바람, 증기기관에 이어 이제 기후변화가 시급한 대응을 요구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해안선 변경을 불러와 선박 접안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잦은 태풍 발생은 항행을 제한한다.

배출가스 감축은 기후변화 대응의 첫걸음이다. 지난 6월27일엔 '한·그리스 친환경 선박 공동 기술개발' 협약이 체결됐다. 친환경 연료 전환을 위한 기술개발, 선박개조 등이 핵심이다.

한·그리스 양국 협력의 기상도는 맑다. 히오스를 떠나는 날 거친 바람을 걱정하며 승선을 앞둔 필자에게 80대 선장 출신 선주는 "때로는 바람이 항행에 도움이 된다"며 안심시켰다. 양국 우호로 가는 항로에 계속 순풍이 불어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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