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정지영·설경구가 말하는 정의 “다 아는 얘기지만 반성하는 척이라도 해야”[SS인터뷰]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사회 부조리를 들춰온 정지영 감독의 카메라가 무고하게 살인자가 된 약자를 향했다. 경찰연기가 시그니처처럼 느껴지는 배우 설경구가 그의 옆자리를 지켰다.
신작 ‘소년들’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로 잘 알려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다뤘다. 죄 없는 소년 3명이 살인자 누명을 쓰고 3년에서 6년 형을 받은 사건이다. 경찰과 검사가 승진을 목적으로 사건을 졸속처리해 애꿎은 소년들의 인생이 뒤바뀌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찰과 검찰 때문에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무려 17의 시간이 걸렸다.
누구나 결과를 아는 사건이지만 정지영 감독의 손을 거치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변모했고, 설경구가 등장하면서 묵직한 힘이 담겼다. 유려하게 이야기를 펼쳐낸 ‘소년들’은 오랜만에 등장한 웰메이드 영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선택할 때 전작에서 보여준 적 있는 인물인지, 이야기가 얼마나 재밌고 올바른지, 연출진의 인품은 문제가 없는지, 스타일 면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따진다. 소탈한 아저씨 같은 설경구도 작품 선택은 매우 전략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설경구가 ‘소년들’을 거절할 이유는 분명하다. 수사반장 황준철 역이 지나치게 ‘공공의 적’ 강철중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야기가 재밌어도 배우가 비슷한 배역을 또 맡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다.
“정지영 감독 때문에 한 거예요. 제가 감독님이 살아온 과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감독님처럼 사회 참여형으로 적극적으로 말하는 분은 흔치 않잖아요. 단식 농성도 하신 적 있죠. 대본보다 그분의 뚝심이 궁금했죠. 막상 일해보니까 상당히 수평적이에요. 젊은 스태프들하고 어깨를 맞대고 대화하시더라고요. 하도 큰 목소리로 다투길래 싸우는 줄 알았더니 격한 토론이었어요. 인간적이더라고요.”
영화는 크게 두 갈래다. 사건이 벌어진 1999년,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2016년이다. 설경구는 마치 1인 2역을 연기하듯 황준철을 그려냈다. 젊은 황준철은 극 중 별명인 ‘미친개’처럼 강인한 반면 노인 황준철은 숨이 죽어있다. 어딘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수년 전 ‘지천명 아이돌’로 거듭난 설경구에게서 자주 보이지 않던 고독함이 담겼다.
“제 캐릭터가 약촌 오거리 사건에서 빌려온 캐릭터예요. 당시 형사님이 그릇된 상사의 잘못을 드러내려다가 17년 동안 승진도 못 하고, 섬으로만 좌천돼서 살아오셨더라고요. 매일 술을 7병씩 드셨대요. 그 얘기를 듣고 1주일 안에 살을 빼려고 했죠. 뭔가 건조할 것 같아서요. 막상 그분을 보니 초라함이 아니라 피폐함까진 갔어야 했던 것 같아요.”
선과 악을 자주 옮겨 다니는 중에도 설경구는 주로 정의로운 대사를 던졌던 배우다. ‘소년들’이야말로 정의를 정직하게 논한다.
“글쎄 제 입으로 정의를 말한다는 게 쑥스러워요. 황준철의 모티브 되는 형사님이 정의죠. 월급을 집에 안 가져다줬대요. 수사비로 쓰느라. 이런 분들 보면 존경스러워지죠. 저도 부끄럽지는 않으려 하지만, 참 고개를 못 들겠어요. 요즘 고발 영화가 적은 것 같아요. ‘소년들’을 많이 보고 정의로 대화를 나누는 사회가 다시 돌아왔으면 하네요.”
정지영 감독은 올해 감독으로만 40주년을 맞았다. 연출부 생활까지 포함하면 영화계에서만 50년을 보냈다. ‘남부군’과 ‘하얀전쟁’,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 등 사회 악을 조명하는 데는 도가 텄다. 작품마다 권력자들의 못된 이기심 때문에 핍박받고 소외된 약자 이야기를 꺼내왔다. ‘소년들’도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돈 많고, 권력도 있고, 잘생겼는데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에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약자 위에 군림하곤 해요. 특히 공권력이 늘 그래왔어요. 제가 본 경찰과 검찰은 죄의식이 크게 없는 집단이에요. ‘소년들’의 모티브가 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다 아는 얘기지만 그래도 들여다보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야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니까.”
경찰 역할을 설경구에게 맡기는 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경찰 역할을 피해 왔다. 순경이든 경무관이든 강철중 이미지를 피하기 힘들어서다. 오히려 정 감독은 정공법을 택했다. “강철중 한 번 해보자”라며 설경구에게 제안했다.
“원래는 약촌 오거리 사건을 하고 싶었어요. 박준영 변호사한테 물어보니까 이미 하고 있대요. 그게 영화 ‘재심’이었어요. 저는 그때 형사가 눈에 들어왔거든요. 근데 ‘재심’은 형사 이야기를 뺐어요. 그러던 중에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알았고, 그 형사를 가져온 거죠. 수사반장 때의 거침없는 얼굴은 강철중이 떠올라요. 그런데 17년을 지나 초라해진 파출소장도 해야 해요. 그 세대 배우 중에 설경구 만한 배우가 없죠.”
그는 또 새로운 영화를 기획 중이다. ‘4.3’ 사건과 백범 김구를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다. 아직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부조리와 정의를 대비시킨 강렬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힘 있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아요. 약한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서 이야기해야 해요. 그것이 적극적인 삶을 만들어요. 무심코 지나간 사건도 다시 보면 적극적인 생각을 하게 돼요. 그 적극성이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번지길 바랍니다. 각자도생이 아니고, 서로 도와가며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가는 게 제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예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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