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은 남편 손잡고 뛴 아내

춘천/구아모 기자 2023. 10. 3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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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춘천마라톤]
김종녀(왼쪽)씨가 29일 춘천마라톤 풀코스 출발을 앞두고 시각장애인 남편 박인석씨 등에 업혀 활짝 웃고 있다. /남강호 기자

“인생도 마라톤이라는데 마라톤까지 중간에 포기하면 앞으로 삶도 포기할 게 너무 많을 거 같았어요. 올해도 무사히 완주했습니다.”

29일 김종녀(59)씨는 지난해에 이어 시각장애인 남편 박인석(61)씨와 함께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다. 남편은 2009년 급성 녹내장을 진단받고 2016년 실명했다. 혼자선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라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간호사인 김씨는 그 뒤 퇴근하면 남편을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마라톤이 취미던 김씨는 남편 의욕과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달리기 연습을 권했다. 처음엔 100m에서 시작해 차차 거리를 늘려갔다. 2019년 부부가 함께 10㎞ 마라톤에 처음 출전했다.

김씨는 “달리기를 하면서 남편 말수가 더 많아지고, 더 활발해졌다”며 “이젠 먼저 달리기하러 가자고 보채곤 한다”고 했다.

지난해엔 부부가 함께 춘천마라톤 풀코스에 처음 도전했다. 기록은 6시간 5분. 12㎞쯤 갔을 때 남편이 포기하자고 했으나, 김씨가 손을 놔주지 않았다. 김씨는 “지금까지 하프코스만큼 왔으니, 어차피 되돌아가야 하는 만큼만 조금 더 달려보자”고 했다고 한다. 남편이 중간에 다리가 저려 쥐가 날 것 같다고 하면 김씨가 ‘야옹’ 고양이 소리로 ‘쥐’를 위협하는 듯하며 기분을 풀어줬다.

올해도 풀코스를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완주했다. 기록은 6시간 10분 26초. 5분가량 늦어졌지만 김씨는 “애초부터 목표는 시간 단축이 아니라 완주”라며 “무사하게, 지난해보다 더 편하게 완주했다”고 말했다. 올해 풀코스 10회를 달성하면서 그는 ‘춘마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다.

남편 박씨는 “35㎞쯤 지날 때는 너무 힘들어서 더 못 할 거 같았는데 결국 해내서 기쁘다”면서 “풀코스에 앞으로 더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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