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학은 절박하게 뛰며 융합… 한국 대학 큰일 났다”

김연주 기자 2023. 10. 30.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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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재 건국대 총장 인터뷰
전영재 건국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대학이 인적 가치를 창출하려면 학생들의 다양성을 보고 선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상대 평가인 수능으로는 어렵다”며 “암기력 좋은 학생보다 지식을 갖고 창의적으로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전영재 건국대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가 아래로 봤던 중국 등 아시아 대학들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한국 대학들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국 대학들이 오랫동안 규제와 관습에 갇혀 제자리에 머무는 동안 다른 아시아 국가 대학들은 뜀박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총장은 “교육부가 규제를 풀어준다고 하는데 아직 디테일이 부족하다”면서 “현장 의견을 듣고 적극적으로 더 풀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동북아 지역 78개 대학 총장들이 모인 자리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중국 대학이 엄청 발전했더라. 대학들이 기업과 연계해서 실용, 융합 교육에 나선다. 도시 하나를 살리기로 하면 대학들이 협력해 인력을 어떻게 공급하고, 기업을 어떻게 돕고, 융합 교육은 어떻게 할지 같이 논의하더라. 한국 대학 중에도 (다른 대학과) 공동학점제를 하거나 통폐합하는 곳들이 있지만, 학령 인구 감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중국은 진짜 살아 있는 실용 교육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자율성 없는 대학, 무사안일주의 빠져

-대학들의 협력 효과는 무엇인가.

“대학마다 잘하는 분야가 다르다. 도시를 살리려고 기업을 유치한다고 치자. 기업의 기술 자문을 대학 한 곳이 하는 게 아니다. 여러 대학에서 분야별로 뛰어난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완벽하게 자문에 응해주는 거다. 과거 우리가 아래로 봤던 아시아 대학들이 급격히 발전하는 걸 보면 ‘아 한국 대학들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아시아 대학들이 변하려는 원동력은 뭘까.

“지금까지 (서구 등에 비해) 낙후됐다고 자평하기 때문에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굉장히 강하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정부 지원 등) 인프라도 받쳐준다. 우리나라는 이제 어느 정도 경제 수준이 올라오니까 느슨해진 거다.”

-한국 대학의 개혁이 더딘 이유는.

“그동안 대학 규제가 너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자율성이 없고 시키는 대로만 하니까 수동적이 됐다. ‘그냥 이렇게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사안일주의도 심하다. 창의성 없이는 대학이 살아나갈 수 없는데 그대로만 있었던 것이다.”

-현 정부는 대학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겠다고 했는데.

“아직 디테일이 부족하다. 예를 들면, 이제 출생 인구가 25만밖에 안 되니 외국 학생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옛날처럼 ‘외국 학생 늘면 불법체류자 늘어난다’는 얘기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지금은 유학생이 (한국에서) 졸업하고 취업 못 하면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2년 정도 시간을 줘서 여기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

-교육부가 최근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전히 ‘수능 점수로 40% 이상 뽑으라’고 한다. 그 자체가 규제다. 이제 대학은 옛날처럼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연구와 교육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인적 가치 창출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학생들의 다양성을 보고 뽑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수능 점수를 강요하고 있다. 수능은 상대 평가다. 상대 평가로는 학생을 다양하게 뽑을 수가 없다. 바이오, 인문학, 공학 등 분야별로 강점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어야 하는데, (상대평가인) 수능 점수로는 그 게 안 된다.”

-상대평가가 왜 문제인가.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평가 방식이다.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로 가야 한다. 그것만 바꿔도 암기식 교육, 입시 위주 교육이 좀 바뀔 거다. 절대평가를 하면 ‘나도 통과하고 너도 통과하니까 다 같이 잘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된다. 친구끼리 같이 협의도 하고 우정도 쌓을 수 있다. 그런데 상대평가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거 아니냐. 맨날 1등이냐 2등이냐 경쟁하니까 지금 많은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적으로 병들고 있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에서 ‘내신 9등급 상대평가’가 ‘5등급 상대평가’로 좀 완화됐다.

“긍정적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점차 그쪽으로 가야 한다. 이번에 시도를 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성 찾도록 대학이 다양한 경험 제공해야

-수능에서 선택 과목이 없어지고 내신도 5등급으로 완화되면 대학별 면접이 강화되어 학생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대학 면접은 어차피 학원에서 정답을 가르쳐줘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 대처하는 능력, 정답이 아니어도 거기에 접근해 가는 모습을 보자는 것이다. 학원에서 대비할 수 없으니 사교육 부담은 더 줄 수 있다.”

-어떤 학생을 뽑고 싶나.

“지금까지 암기력 좋은 학생을 뽑았지만, 이제 지식은 AI(인공지능)가 다 해준다. 이제 그 지식을 갖고 창의적으로 자기 걸 만들수 있는 학생들이 필요하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했는데.

“지역 의료 공동화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의대 정원 문제는 ‘학생들이 왜 의대에 몰리는가’ 하는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의대 쏠림은 대학을 졸업해도 비전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의술로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직장을 찾아서 가는 거다.”

암기력 좋은 학생보다 창의적 학생 필요

-요즘 ‘초등 의대반’이 있을 정도로 의대 집중이 심각하다.

“대학에 와서 (의사 등) 적성을 찾아도 늦지 않다. 최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자유전공학부로 입학한 학생들이 의대도 갈 수 있게 하자고 했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고 ‘이 길이 내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가도 된다. 로스쿨도 나이 들어 가는데, 의사가 꼭 20대 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의대 쏠림을 막기 위해 대학이 할 일은.

“학생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내가 학문에 뜻이 있는지, 취업이나 창업을 할 건지 결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건국대는 1학점짜리 ‘마이크로 레슨(수업)’을 9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수업을 들어보고 맞는 목표와 적성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다. 창업하려는 학생이 있으면 하게 도와주고 평생 AS(애프터서비스)를 해줘야 한다. 여러 분야 교수들이 멘토도 되어주고, 펀딩도 해주고, 공간도 지원해줘야 한다.”

-정부가 ‘학과 간 벽’을 허무는 것을 중점 추진하고 있는데.

“기존 벽을 허문다는 게 참 어렵다. 건국대는 일단 2025학년도 입시에선 항공드론, AI, 실감미디어 등 첨단 분야부터 시작하고 (다른 분야는)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려 한다.”

-건국대가 추진하는 교육 개혁은.

“개인 맞춤형 교육이다. 대표적으로 작년에 AI 튜터 ‘닥터 쿠’(Dr. KU)를 개발했다. 학생들은 닥터 쿠로 기초 학력을 스스로 진단하고, 어떤 부분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피드백도 받는다. 확률과 통계, 미적분, 물리 같은 기초 과목에서 주로 사용한다.”

☞전영재 총장은

건국대 화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SDI 종합연구소 LCD 연구팀장, 삼성종합기술원 디스플레이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건국대 화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건국대 대외협력처장, 산업대학원장을 지냈고, 2020년 9월 21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서울총장포럼 회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지냈다. LCD 연구 분야 권위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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