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 수급 뚝… 연구 지원 뚝… 과학계의 눈물
중성미자 특성 연구하는 ‘예미랩’… 러시아 검출기 보급 중단돼 위기
정부, 내년 연구개발 예산 삭감
비싼 외국산 원료-장치에 의존… 실험실 재료 수급 고충 커질 듯
29일 과학계에 따르면 국내 과학 연구에 사용되는 물질, 시료 등 재료는 대부분 외국산에 의존한다. 국제 정세가 요동칠 때마다 실험실도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다. 재료비 가격이 올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입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가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기로 하면서 실험실에서의 연구재료비는 우선 감축 대상이 돼 불안감이 배가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소속 한 박사후연구원은 “R&D 예산 삭감안 발표 후 ‘재료를 아껴가며 실험하자’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시도하려던 다양한 실험 중 가능한 실험만 고르고 골라야 한다”고 했다.
● 요동치는 국제정세로 과학계 시름 깊어져
신약을 개발하려면 약리학적 특성, 안정성, 용해성 등을 고려해 시약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신뢰도 높은 공급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시약회사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있다. 영국 컨설팅사 오리디언이 프랑스·우크라이나 공동연구팀과 함께 학술지 드럭 디스커버리 투데이에 2019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신약 개발 회사의 80%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시약사에 의존한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곳이 에나민이다. 국내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촉매연구단도 에나민에서 필요한 시약을 공급받아 왔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약 공급이 멈췄다. 연구단은 서둘러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했다.
섬광 단결정 검출기 보급이 중단된 예미랩의 사정은 좀 더 난처했다. 검출기의 경우 미국 등지에서 대체품을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소중호 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은 “검출기 종류마다 요구되는 기술 노하우나 설치 환경이 다른데, 미국은 자국 기술력에만 적합한 검출기를 생산하기 때문”이라며 “공급망 차질을 대비해 자체 기술을 개발했지만 아직 러시아의 기술력을 따라잡기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차전지와 반도체 연구·생산 역시 국가 간 무역 제재로 인한 재료 수급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리튬, 니켈, 흑연 등과 같은 리튬이온전지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현진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기준 이차전지 관련 국내 원자재 수입의 67∼68%는 중국에 의존했다고 분석했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으면 리스크도 크다. 20일 발표된 흑연 수출 통제가 대표적 사례다. 이 책임연구원은 “중국이 갑작스럽게 수출을 막을 경우 국내 연구·산업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 R&D 예산 삭감으로 재료비 감축 ‘이중고’
국내에서도 각종 원료와 실험 장치를 국산화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외국산에 의존한다. 장지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고품질·고순도 시료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오는 경향이 크다”며 “기초과학이 튼튼한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싼 값을 불러도 재료를 사올 수밖에 없게끔 오랫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대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것”라고 덧붙였다.
내년 과학기술 R&D 예산이 대폭 감축되면 연구를 위한 재료 수급에 고충이 더해질 전망이다. 세계적 메신저리보핵산(mRNA) 연구자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도 6일 부산에서 열린 한국생물공학회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김 석좌교수는 자신이 이끄는 IBS RNA 연구단의 일반 연구비 예산도 20% 삭감됐다고 전했다. 그는 “인력을 내보낼 순 없으니 재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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