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커피인류
쓴 커피를 왜 마시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 쓴맛에서 고소함과 단맛, 신맛, 과일 향, 꽃 향의 섬세한 맛을 찾는다. 그 깊고 풍부한 맛에 빠지는 것이다.
나에게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다. 빠른 생활 리듬과 바쁜 일상에 활기를 찾기 위해 식후 보약처럼 커피를 마신다. 아름다운 경치가 함께 공존해야 맛이 극대화되는 이유로 여행길에서도 커피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때문에 그것은 나의 일상에 필요한 생활 필수 음료가 된 지 오래다. ‘커피 수혈’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현대인은 한잔의 커피에서 감미로운 쓴맛과 향에 매료되고 있다. 그들의 소비에 맞춰 스페셜 커피전문점부터 각종 디저트를 포함한 베이커리 카페까지 커피 애호가들이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들이 다양하게 늘어나면서 커피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인구 대비 커피 소비량이 세계 10위 안에 든다고 한다. 한국에 커피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서 마신 커피를 시작으로, 12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커피는 아라비아에서 터키와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사회와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커피에 관한 흥미로운 목격담과 에피소드들을 살펴보겠다. 1902년 고종이 손탁에게 하사해 꾸민 ‘손탁호텔 레스토랑’은 당시 외국 인사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정동파 인사들로 하여금 나라를 지키기 위한 외교전을 펼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깨어나라, 아침이므로/아침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할 시간이다/팔을 벌려라/영접할 아름다운 이가 왔도다….” ‘아침의 포도주’는 커피를 상징한다. 유럽에서는 17세기 초에 커피를 ‘아라비아의 와인’이라고 했다. (중략) 바흐는 ‘커피 칸타타’라는 작품을 만들어 커피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는 “모닝커피가 없으면, 나는 그저 말린 고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 베토벤은 모닝커피용으로 원두 60알을 골라낸 뒤 추출하게 했다. 커피에서 ‘60’은 ‘베토벤 넘버’라고도 불린다. 괴테도 하루에 커피를 20~30잔 마셨다. 그의 커피 중독에 대한 주변 걱정에도 83세까지 장수했다. 그의 가곡 ‘죽음의 소녀’는 커피를 분쇄하면서 향기를 감상하다가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쓴 곡이었다. 프랑스 외교관인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은 이렇게 말했다.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다.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루즈벨트도 하루에 3.8리터나 마셨다고 한다. 그의 커피잔은 유난히 컸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커피잔은 욕조보다 커 보였다”고 했을 정도다. 그가 1907년 테네시주 내슈빌의 맥스웰하우스 호텔에 머물 때 그곳의 커피 맛에 매료되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구먼!”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요즘, ‘커피의 노예’가 되었다 해도 좋을 만큼 커피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만큼 그것은 우리 일상에 깊이 흡수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커피는 기분전환과 집중력 향상, 암 예방 효과에 좋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과하면 좋지 않다. 하루 2잔 이상 마시는 것과 잠자기 전에 마시는 것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저녁에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지도상으로 북쪽에 니카라과, 남동쪽에 파나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코스타리카를 나는 ‘허리가 아름다운 나라’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지역의 커피 향과 부드러운 산미를 즐긴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차갑다. 나는 오늘도 코스타리카 원두를 분쇄기에 갈아 커피 여과지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낡은 커피메이커 빨간 버튼을 누른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가장 황홀한 시간이다. 향이 은은하게 집 안 곳곳에 퍼지며 온몸을 감싼다. 심호흡으로 내 안에 향을 가둔다. 그리고 그 에너지로 늘어진 몸을 바로 세우며 쌀쌀한 아침을 맞는다. 따뜻한 커피와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포근할 거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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