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고독사 없는 유연사회(有緣社會)를 꿈꾸며
약 10년 전 우연찮은 기회에 ‘노인의 날’을 기념해 YTN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인가 매년 10월이 되면 노인에 대한 짧은 상념을 하게 된다. 초고령사회의 도래, 소외·단절로 점철되는 무연사회(無緣社會)로의 급속한 진행, 그리고 홀로 생을 마감하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고독사 문제! 그 어느 하나 무겁지 않은 주제가 없다.
그런데 ‘고독사’라는 말은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을까?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먼저 맞고, 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현상을 먼저 맞닥뜨린 일본에서, 2001년 요시다 다이치가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등의 책을 펴내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가 이 말을 처음 인식한 때는 2012년이었다. 강릉에서 갓난아이와 할머니가 사망한 지 보름 만에 발견된 뉴스였다. 당시 고독사를 검색하면, 백골이 된 상태로 수년 후 발견되었다든가, 고독사 문제는 심각해지는데 그 법적 개념도 없고 공식적인 통계도 없다는 매우 절망스러운 내용뿐이었다.
이번달 다시 고독사를 검색해 보았다. 10년의 시간은 매우 컸다. 고독사의 법적 개념과 원인·해결방안에 대한 글이 등장하고, 공식적인 통계가 나오는가 하면, 지자체별로 고독사 예방 정책들이 소개되고, 고독사 위험군 실태조사를 진행한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20년 4월 1일 시행되었다.
필자는 볼이 살짝 빨개지며 고무되었다. 고독사의 법적 개념이 정립되고, 그 예방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며,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이 수립되고, 예산이 투입된다는 것은, 바로 고독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그 문제제기에 더 많은 사람이 뜻을 보태고, 그것이 시민사회의 총의가 되어 법과 제도를 만든 것이다.
지난 5월 정부는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해 발표했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연계해 고독사 위험군을 찾고, 지역공동체·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서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며, 청년·중장년·노년 등 생애주기별 서비스를 지원하고, 지역 주도형 서비스 신설 등 고독사 예방·관리 정책 기반을 구축한다는 게 주요 골자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그동안 고독사는 노인 문제로 잘못 인식되었던 점을 교정해 실제 통계상 중장년 1인가구 남성이 가장 심각한 고독사 위험군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분석해 ‘서비스 개입거부 중장년에 대한 참여 유도 모델과 대응 매뉴얼’을 2024년까지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복지정책의 축이 물적 지원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인적 지원’ 모델을 설계해 시행하는데 다소간의 시행착오가 있을 거라는 점은 예상된다. 하지만 영국에서 ‘외로움부’라는 정부부처가 생겨날 정도로, 고독과 고립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시대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물적 지원만으로는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따라서 모처럼의 인적 지원 모델 개발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해당 자원군(資源群)의 폭넓은 발굴과 양성, 안정적 후방 지원 시스템이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시신 인수자가 없는 고독사 사망자에 대해 공영장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올해 3월 28일 무연고 시신에 대해 조례에 따라 장례의식을 행한 후 매장하도록 개정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제12조와 궤를 같이 한다. 즉, 고독사 사망자에 대하여도 공영장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현행법상 무연고 시신과 고독사 시신은 별개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1962년 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구 매장등및묘지등에관한법률)’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지자체의 공영장례 의무규정을 신설한 점에 비추어 보면 말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그리고 그 존엄성은 죽음에 이를 때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렇게 고독사 없는 유연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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