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슬픔이 앞서간 자리

허태준 작가 2023. 10.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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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영국 밴드 오아시스를 좋아했다.

마음을 잡아끄는 멜로디와 생생한 악기의 질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긍정을 넘어 낙천적이기까지 한 노래 가사가 좋았다.

한동안 잊혔던 오아시스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영상 때문이었다.

"이 노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같다. 이미 벌어진 일을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맨체스터 시민의 인터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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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준 작가

중학교 시절 영국 밴드 오아시스를 좋아했다. 마음을 잡아끄는 멜로디와 생생한 악기의 질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긍정을 넘어 낙천적이기까지 한 노래 가사가 좋았다. 자잘한 고민들로 괴로운 날이면 이어폰 볼륨을 키우고 가만히 흘러나오는 가사를 따라 읊고는 했다. 때로는 로큰롤 스타가 될 거라고, 때로는 영원히 살 거라고 노래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저 멀리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 잊혔던 오아시스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영상 때문이었다. 유럽으로 보이는 어느 광장에서 시민들이 함께 오아시스의 대표곡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유도하는 전주나 그들을 이끄는 지휘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로에게 기대듯이, 400여 명의 시민이 하나둘 목소리를 더하고 있었다.

그곳이 맨체스터 자살 폭탄 테러의 추모 공간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2017년 5월 22일.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에서는 세계적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투어 콘서트가 끝난 직후 두 차례의 큰 폭발이 일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심취한 20대 청년이 사제 폭탄을 터트린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콘서트장을 빠져나가던 관객 22명이 죽고 800여 명이 다쳤다.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될 사건으로부터 고작 사흘 뒤, 추모를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슬픔으로 무겁게 깔린 공기를 노랫말을 통해 전혀 다른 울림으로 만들어 내는 장면은 나에게 무척 낯설었다. “이 노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같다. 이미 벌어진 일을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맨체스터 시민의 인터뷰도 그랬다. 맨체스터와 달리, 우리 사회의 슬픔은 산재한 문제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애도와 추모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참사 1주년을 앞둔 최근까지도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의 부재는 애도의 반대편에 혐오를 가져다 두었다. 유가족들의 요구와 집회는 어느새 ‘정치적’인 것으로 낙인 찍혔고, 애도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방해하는 귀찮고 쓸모없는 행위로 취급받았다.

그렇다고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국회에서 발의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8월 행안위를 통과했지만,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법률 개정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들도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조사가 아닌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한다. 지난 일에 연연하기보다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앞서 말한 맨체스터 시민의 교훈과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그 미래가 ‘과거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격하다. 맨체스터 시민이 노래하던 미래는 결코 ‘모든 걸 없던 일로 엎어 놓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마주했다. 테러 사건의 당사자였던 아리아나 그란데는 당시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움츠러들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공포에 떨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고 테러가 발생한 지 정확히 2주 뒤, 맨체스터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콘서트를 다시 열었다. 2만 명의 시민은 그곳에서도 ‘don’t look back in anger’를 함께 불렀다.

이미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참사나 테러가 없었던 것 마냥 살아갈 수도 없다. 그 두 가지 절대적인 사실 앞에서, 그럼에도 ‘화내면서 뒤돌아보지 않겠다(don‘t look back in anger)’는 맨체스터 시민의 노랫말은 그들의 슬픔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마침내 미래로 나아갔음을 암시한다.


10·29 이태원 참사로부터 1년, 우리의 슬픔은 어디까지 왔나. 애도와 추모를 발판으로 더 나은 미래로 향하고 있나. 아니면 혐오와 차별에 얽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나. 미래를 논의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슬픔이 앞서간 자리에 따라 우리의 현실도 조금씩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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