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수의 그림산책] 윤재 이규옥의 ‘고진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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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이후 부산 지역 화단에서 유행한 독특한 소재가 있다.
다른 지역 화가들도 이러한 내용을 그렸겠지만, 특히 이곳 부산 지역에서 여러 화가들이 유사한 내용의 그림을 그렸다.
이규옥은 모란이나 장미, 매화 같은 꽃 그림에도 뛰어났지만, 그의 장기는 아무래도 '고진감래'와 같은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인물화이다.
지금도 부산 지역 그림하면 '고진감래'가 떠오르는 것은 모두 이규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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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이후 부산 지역 화단에서 유행한 독특한 소재가 있다. 통칭해서 ‘고진감래(苦盡甘來)’라 부를 만하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다른 지역 화가들도 이러한 내용을 그렸겠지만, 특히 이곳 부산 지역에서 여러 화가들이 유사한 내용의 그림을 그렸다. 어떤 화가는 ‘고진감래’, 어떤 이는 ‘협동’, ‘총화’ 등의 제목을 달기도 했지만, 크게 보면 모두 고난을 극복하는 유사한 내용이다. 유독 부산 지역에 이런 제목의 작품이 유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곳이 한국전쟁 때 전국의 많은 사람이 전란을 피해서 살던 피란지였다는 점이다. 갑자기 일어난 전쟁으로 모든 것을 내팽겨 둔 채 피란 온 실향민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고단한 삶의 현실이 투영된 그림이 바로 ‘고진감래’이다.
‘고진감래’ 형식의 그림을 그린 이로는 ‘윤재(潤齋) 이규옥(李圭鈺, 1916~1999)’이 첫 손에 꼽힌다. 이규옥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의 제자로 화조와 인물화에 능한 화가이다. 일본에 유학한 후 돌아와 부산에 자리 잡았다.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렀고, 다양한 작품으로 후배들을 선도했다. 그는 선배 화가로서 매우 온화한 품성을 가져 후배, 제자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제자가 자신이 자주 그리는 소재에 재능을 보이면 제자에게 그 소재를 양보해 장기로 삼게 하고, 자신은 다시는 그 소재를 안 그릴 정도로 배려하는 마음이 넉넉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혁신적으로 창의성을 보이거나 매우 자극적이진 않지만, 인간적인 내음이 가득한 것들이다.
이규옥은 모란이나 장미, 매화 같은 꽃 그림에도 뛰어났지만, 그의 장기는 아무래도 ‘고진감래’와 같은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인물화이다. 그림 내용은 주로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어린아이를 업고, 머리에 물동이나 소쿠리를 이고 있는 모습이다. 현실의 어려움이 가득 배어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꼭 고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모습 속에는 어려운 현실을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이겨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늘 가족을 챙겨야만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표상이다. 어머니들은 이런 고난을 숙명으로 생각하고, 힘든 내색 없이 견뎌왔다. 그림에서 보듯 가족뿐만 아니라 키우는 강아지도 어머니를 의지하며 따른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 이후의 지난한 세월 속에서 어려운 시절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한 시대를 이겨나갔다. 이러한 현실은 화가들의 집안도 그랬을 것이다. 화가들의 눈에 이처럼 감동적인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화가들은 이러한 순간을 회상하며 그림으로 그렸으며,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좋아했다. 1970, 80년대를 지나며 경제가 안정되고, 과거를 추억하며 희망을 볼 수 있는 그림을 찾았다. 이때 많이 팔려 집에 걸린 작품이 바로 이규옥의 ‘고진감래’와 같은 작품들이다. 이런 그림은 청초(靑艸) 이석우(李錫雨), 윤석균 등 여러 작가의 작품 속에도 등장하며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지금도 부산 지역 그림하면 ‘고진감래’가 떠오르는 것은 모두 이규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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