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1월 1일은 잡지의 날… 고품격 잡지엔 유튜브에 없는 매력이 있다
잡지(雜誌)처럼 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잡지가 그려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인터넷과 유튜브 세상이라지만, 고품격 잡지의 매력과 멋을 따라잡을 매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 잡지일까?
‘잡(雜)’에는 부정적 의미(잡일, 잡동사니, 조잡 등)와 긍정적 의미(모든 것을 다루는 백과사전적 의미)가 혼재하는데도 마땅한 고유명사를 찾지 못해 아직도 사용한다. 물론 그 근거는 잡지 등 정기간행물 진흥에 관한 법률이다. 법에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정기간행물을 잡지라 명명(命名)하니 달리 부르기도 어색하다. 애당초 19세기 서양의 잡지를 중국과 일본에서 잡지라 번역하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 역사성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잡지의 대체 용어로 매거진(magazine)이라는 외국어가 있지만 법이 존재하는 한 어려워 보인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서양 매거진의 역사는 아랍어 ‘마카젱(창고)’, 프랑스어 ‘Magazin(마가젱·시장)’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시장 잡화점 또는 온갖 것을 보관하는 창고(倉庫)라는 뜻이다. 언뜻 와 닿는 어원이다. 잡지는 시장이나 백화점처럼 없는 게 없는 콘텐츠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1960~1970년대를 소년기로 보낸 세대에게는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에 대한 추억이 있다. 다양한 부록과 기사, 만화 등이 실려 있어서, 당시 어린 내겐 성탄절 선물로 받고 싶은 귀한 잡지였다. 또한 잡지 제호는 걸출한 서예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표지는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들의 놀이터였다.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등이 있었다. 화가들은 무명 시절 잡지를 통해 그들의 재능을 알릴 수 있었다. 이는 샤갈의 그림이 ’타임(TIME)’지의 표지를 장식한 것이나, 앤디워홀이 ‘보그(Vogue)’지 표지를 장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시대의 자화상인 잡지가 온라인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도 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지난 2011년 제1차 정기간행물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으며, 2017년에는 2차, 2022년 들어 3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입안되어도 예산 배정 없는 정책은 말 잔치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난 2011년, 정기간행물 진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될 당시 5년간 433억원을 지원한다는 정부 측의 발표가 있었으나, 그중 10분의 1이라도 집행된 바가 있는지 묻고 싶다. 작년에는 예산 규모도 없는 제3차 정기간행물 진흥 5개년 계획을 그럴싸하게 발표하더니, 급기야 올해 잡지에 대한 2024년 정부 예산안을 금년 대비 25%를 삭감하였다. 이럴 바엔 차라리 정기간행물 진흥 5개년 계획을 철회하라 외치고 싶다.
정부 및 국회에 요청한다. 잡지 진흥의 목적은 잡지계, 즉 잡지 산업 종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잡지 읽는 환경을 조성하여 다양성, 전문성을 갗춘 잡지 콘텐츠에 대한 국민의 정보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고, 잡지 산업을 부흥하는 것이다. 허울뿐인 5개년 계획은 차치하고 우선 다음 세 가지라도 실천하기를 요구한다.
첫째, 요즘 같은 스피드 시대에 1개월 이상의 간별(刊別) 기준을 정하고 잡지와 신문을 구별하는 법규정은 구(舊)시대적이다. 1주간이면 이미 신문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한다. 이미 뉴스가 아니다. 주간(週刊) 이상의 정기간행물을 잡지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둘째, 전자 잡지(E-Magazine)의 형태도 정기간행물로 인정, 납본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 셋째, 잡지도 도서처럼 조속히 소득공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 도서에만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기에, 서점에서 도서와 잡지를 동시에 구매할 경우, 소득공제를 위해서는 도서와 잡지를 각각 결제(決濟)해야 한다. 이 얼마나 불편한 현실인가?
11월 1일은 1908년 근대 잡지의 효시인 ‘소년(少年)’지의 창간일을 기념해 1965년 제정된 잡지의 날이다. 잡지처럼 살고 싶은 내겐 뜻깊은 날이다. 어린 시절 소년지(少年誌)를 갖고 싶었던 열망을 잊지 못한 나는 아직도 잡지에 대한 애착이 있다.
고품질의 이미지와 글로 무장한 잡지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수준 높은 콘텐츠로 무장한 잡지를 무한정 즐기고 싶다. 나는 영원히 잡지처럼 살고 싶다. 세련되고, 우아하며, 기품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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