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예술이 왜 공짜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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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유럽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파리'를 다녀온 이선아 기자의 출장 명세서에 붙은 영수증 뭉치의 태반은 미술관 입장료였다.
"2008년 무료 관람을 시범 실시했는데 효과가 없어서 그만뒀다더라. 공짜든 아니든, 미술관 안 가는 사람은 어차피 안 가니까. 괜히 입장료 수입만 줄어들어 세금 축내지 말자는 거지. 그래서 영국 빼곤 웬만한 선진국들 다 돈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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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 15유로, 루이비통미술관 14유로, 피노컬렉션 14유로, 오랑주리미술관 11유로….
지난주 유럽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파리’를 다녀온 이선아 기자의 출장 명세서에 붙은 영수증 뭉치의 태반은 미술관 입장료였다. 다 더하니 제법 뭉칫돈이 됐다. 궁금했다. 한국도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 관람제(상설 전시 기준)를 하는데, 자칭 ‘문화강국’이라고 뻐기는 프랑스가 왜 안 하는지.
문화체육관광부에 물었더니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2008년 무료 관람을 시범 실시했는데 효과가 없어서 그만뒀다더라. 공짜든 아니든, 미술관 안 가는 사람은 어차피 안 가니까. 괜히 입장료 수입만 줄어들어 세금 축내지 말자는 거지. 그래서 영국 빼곤 웬만한 선진국들 다 돈 받아.”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저 높은 ‘예술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추려면 입장료라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외국인 입장료를 우리가 내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자료를 찾아봤다. 프랑스와 비슷했다. 무료 관람제를 시행한 2008년부터 첫 3년 동안만 관람객이 늘었고, 이후엔 정체였다. 확실한 건 국공립미술·박물관에 투입되는 세금과 ‘공짜 관람’한 외국인이 늘었다는 것.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기관이 쓴 돈은 2021년 1855억원에서 지난해 2017억원으로 8.7% 증가했고, 같은 기간 외국인 방문자는 1만4000명에서 7만명으로 다섯 배 늘었다. 올 들어선 6개월 만에 7만 명을 넘어섰다. 알다시피 무료 관람은 공짜가 아니다. 박물관 운영에 드는 경비를 누군가는 내야 하니까. 우리는 이걸 세금으로 메우니 결국 우리 국민이 외국인 입장료를 내준 셈이다.
무료 관람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덕수궁과 경복궁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처럼) 금싸라기 땅에 세운 멋진 미술관에서 세금으로 빚어낸 괜찮은 전시를 공짜로 보여주니, 사립미술관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국립미술관보다 별론데 입장료를 왜 받냐’는 항의를 받아도 대꾸할 말이 없다”는 한 사립미술관 관장의 하소연은 과장이 아니다.
무료 관람제로 죽어 나가는 건 사립미술관뿐만 아니다. 결국엔 국공립미술관의 경쟁력도 떨어뜨린다. ‘죽기 살기’로 일할 유인이 없으니까. 무료인데, 전시 수준이 낮건 말건 그 누가 “돈 아깝다”고 불평하겠는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발길을 돌릴 만한 사립 전시회도 별로 없는데.
'제값 받기'로 문화경쟁력 높여야
언젠가부터 ‘선의’로 포장된 공짜 정책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 끝없이 나오는 ‘무상 시리즈’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현금 살포 정책’에 나라 살림은 거덜 나기 직전으로 내몰렸다. 더 늦기 전에 하나씩 바로잡아야 한다. 무료 관람제 폐지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이참에 “내가 가건, 안 가건 빈 좌석 아니냐”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고 그림이 닳냐”는 식의 ‘문화예술은 공짜’란 인식도 바꿔나가야 한다.
다른 모든 게 그러하듯 공연과 전시도 내 돈을 내야 더 몰입하게 되고, 그래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산다) 소비자가 늘어야 예술인과 예술 기관들이 이들을 홀리기 위해 밤을 새운다. 이런 게 바로 선순환이다. 그러니 무료 관람은 문화소외계층이나 청소년 정도로 한정하는 게 맞다. 예술은 공짜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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