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與 혁신은 ‘양떼 정당’ 반성부터

정용관 논설실장 2023. 10. 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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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중진 험지 출마가 우선적 과제인지 의문
아랫돌 빼 윗돌 괴는 ‘혁신 시늉’ 공감 못 얻어
지역구보다 국익 챙긴 버크의 ‘보수 정신’ 되새겨
특권 혁파 등 ‘밥값 하는 국회’의 비전-인물 내놔야
정용관 논설실장
보수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현실 정치인이기도 했다. 1774년 무역항 브리스틀에서 어느 급진주의자에 이어 2위로 하원의원에 선출된 그의 당선 연설이 잘 알려진 ‘브리스틀의 유권자에게 드리는 말씀’이다. “의회는 나라 전체의 이익을 심사숙고하는 모임이다. … 유권자 여러분은 의원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단 여러분이 의원을 뽑고 나면 그 의원은 브리스틀 소속이 아니라 의회 소속이다.” 무려 250년 전의 연설인데도 울림이 크다.

탁월한 버크 평전으로 꼽히는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제시 노먼)에는 이 밖에도 자존심 강하고 때로 독선적인, 어쩌면 매버릭(maverick) 정치인으로 볼 수도 있는 숱한 일화가 나온다. 6년 임기 중 브리스틀 지역구를 겨우 2번밖에 찾지 않았다니 요즘으로선 상상조차 어렵다.

당수의 뜻대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치적 양떼’가 되길 거부하려 했던 버크의 정치 생애를 짧게나마 거론하는 이유는 집권 여당의 혁신 논의를 보면서 드는 공허함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낙동강 하류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가 있고, 김기현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게 들린다. 정계 개편이니 한동훈 차출이니 하는 시나리오도 난무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총선 전술(戰術) 차원의 진단과 해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내년 총선은 ‘정권 심판론’ 대 ‘거야 심판론’의 대결이란 측면이 강하지만, 또 다른 한 축은 ‘국회 심판론’이 될 것으로 본다. 국익보다는 당리당략, 지역구에만 목매는 4류 정치에 대한 심판이다. 각종 민생 법안은 물론이고 이태원 참사 1년이 되도록 ‘주최자 없는 자발적 행사’에 적용할 인파 사고 예방 매뉴얼조차 여야 정쟁 탓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해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심판이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 대우,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가성비 최악 집단이란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문득 75년 전 제헌의회 때 세비나 대우는 어땠을까 궁금했다. 한 제헌의원 회고다. “영국에선 의원 봉급이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 부처 사무관 봉급 수준이라고 해서 그 정도로 했다.” 제헌의회 속기록을 찾아보니 의원들 살림살이 문제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다. “민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때 (국회의원) 후생부 설치를 논하는 게…” “지금 굶어서 배를 쥐고 지내는 동포가 있으니 만치, 한 푼이라도 경제해서 샐 틈 없이…” “사무원들도 될 수 있는 대로 줄여서 이틀에 할 일을 하루에 하도록 수요를 줄이고…” 등등.

요즘 국회의원은 연봉 1억5000여만 원에 의정활동 지원비로 1억1200여만 원을 추가로 받는다. 그 밖의 지원도 숱하다. 제헌의원들이 하늘에서 본다면 까무러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국가 미래에 대한 보편적 이익에 충실한가. 그렇게 누리면서 하는 일은 점점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다를 게 없다. 국립 의대 유치전에서 보듯 지역구 이해가 걸린 현안이라면 삭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버크 얘기도, 세비 얘기도 고리타분할 순 있지만 왜 국회가 불신의 온상이 됐는지 되새길 시점이다. 버크가 강조했듯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을 대표해 국가의 이익을 심사숙고해 제안하고, 대통령은 이를 집행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기업으로 치면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 국민은 주주(株主), 국회는 주주를 대신한 정책 제언자이자 감시자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대선보다 총선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지금쯤 이상적이긴 하나 버크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는 있지 않을까. 국민의힘은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 살피는 ‘양떼 정당’이 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존재론적 반성문을 쓰는 것에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국가의 보편적 이익을 고민하고 추구하거나, 적어도 국익과 지역구 이해관계의 조화를 모색할 정도의 자세는 돼 있는 인물을 어떻게 얼마나 공천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먼저 나와야 한다. 영남권 다선 의원들의 험지 출마나 용퇴 요구 등은 그다음 수순의 얘기다. 그게 용산 권력자와의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덕목은 ‘공익(公益)’에 대한 판단력과 실행 의지이지 정쟁에 앞장서는 전사(戰士)가 아니다. 내년 총선은 승패를 넘어 입법부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느냐가 판가름 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선제적으로 특권 혁파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밥값 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뚜렷한 방향 없이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수준의 혁신 시늉으론 국민 마음을 얻기 힘들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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