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줌인/임현석]그도 어른이 되려는 것일까
해당 작이 14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 극장가 관객 기록을 갈아치운 가운데 50대 감독의 이른 퇴장을 받아들일 수 없던 팬들 성화로 그는 이듬해 은퇴를 철회했다. 그러나 다음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을 내놓으며 재차 은퇴 선언. 그러다가 당초 기획만 맡기로 했던 2004년 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선 직접 감독직을 맡으며 복귀. 다음 작 ‘벼랑 위의 포뇨’(2008년)를 제작 중 또 은퇴 선언, 다시 복귀.
가장 최근 은퇴 선언은 10년 전이다. 장편 극장판 ‘바람이 분다’(2013년) 발표 당시 미야자키는 기자들에게 “또 말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번엔 진짜 은퇴다”라고 발언했다. 본인도 머쓱했는지 말한 뒤엔 멋쩍게 웃었다.
그동안 그의 은퇴 번복은 특유의 완벽주의 성향과 경영상 이유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은퇴 선언과 무관하게 매일 회사에 출근해 오던 그로선 뒷방 신세를 견디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결국 복귀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또 그는 흥행 실적이 상대적으로 다소 부진했던 경우(벼랑 위의 포뇨) ‘잘 팔리는’ 감독으로서 실적을 만회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밝히며 복귀하기도 했다. 흥행과 작품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진짜 후계자가 나오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됐다. 그땐(아쉽긴 해도) 미야자키도 진짜 내려놓겠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전작 ‘바람이 분다’부터 이런 시각이 달라졌다. 미야자키가 이전 작품들을 미진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겠다는 열의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최근 들어 신화적 세계관을 덜어내면서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자신의 어린 시절 무의식을 지배했던 이미지와 그 근원에 대해서 풀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미야자키 이전 작품들에 녹아들어 있는 생태주의와 반전·평화주의는 모순적인 배경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선연해진다.
예컨대 전작 ‘바람이 분다’는 평화를 바라면서도 전쟁에 사용되는 전투기에 매혹된 어린 시절의 향수가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거 모순 아니냐는 질문에 노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도 선선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평화주의와 향수를 오가다가 결국 우울로 이어지는 해당 작품의 서사는 느슨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는 그 작품만으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기억과 감정을 충분히 풀어내지 못했다고 느꼈으리라.
그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최신작에서 모순을 스스로 끄집어 낸다. 군수공장 공장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라는 실제 자신의 생활 배경을 소환한다. 세계가 무너진 이후에도 살아남아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과거 정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번 작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환멸을 동시에 품는 실존에 대해 미야자키가 그 모습대로 인정하고 다음 스텝으로 가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제 관건은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지 그 구체성에 달렸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그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이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잊느냐, 기억하느냐가 주인공 마히토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미야자키에게 천착해 온 서브컬처 평론가 손지상 서울웹툰아카데미 멘토는 “결국 미야자키는 자신의 정체성과 모순을 직시한 뒤 ‘나는 이렇게 살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며 이는 제목에 숨겨진 진짜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작은 미야자키 작품 속 소녀 이미지가 모성과 연결돼 있다는 그동안의 비평 분석에 대해 ‘히미’라는 캐릭터를 통해 직설적으로 화답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미야자키가 유년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일까. 그럼 이제 그도 어른이 되는 것일까. 그는 또 작품을 내놓겠지만, 적어도 그의 유년 이야기는 종지부를 찍었다.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질문을 던져놓고선.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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