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연구 첫째 이유는 ‘안보’… 1등 아니어도 뒤처지진 말아야” [파워인터뷰]
최순원 MIT 교수
양자과학 분야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최순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36)는 후발주자인 한국이 이 분야 연구에 왜 과감하게 투자해야 하는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최 교수는 2017년 세계 최초로 ‘시간 결정’을 실험적으로 구현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 논문을 장식했다. 아직 30대 중반의 젊은 학자지만 네이처,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만 20편에 다다른다.》
최 교수는 양자의 잠재성이 무한하다고 했다. 현재의 보안 체계를 모두 무너뜨릴 수 있는 양자컴퓨터, 미세한 중력의 차이를 이용해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양자 센서 등 현재 개발되고 있는 기술만 해도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올해 과학·기술 부문 인촌상을 수상한 최 교수와 18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인촌상 상금 일부를 세종인재평생교육진흥원에 기부했다.
“이전에 받으셨던 분들에 비해 경력도 짧고 나이도 어린데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영예롭게 생각한다. 공무원이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린 나이부터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연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최 교수의 부친은 최민호 세종시장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학부를 보냈고 이후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며 고민이 많았다. 연구의 재미, 성취감 같은 나의 행복을 위한 삶과 나라나 주변 사람을 위해 사는 삶 사이에서 정말 많이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가 상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개인이 즐겁게 하는 연구가 결국 한국 사회와 물리학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받은 인촌상은 나의 재미를 위해 했던 연구로 받았지만, 기부를 통해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물리학에서도 천재들만 연구한다는 ‘양자역학’을 선택한 이유는.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았다기보다는 ‘정보학’에 흥미가 있었다. 암호, 정보통신 같은 학문에 푹 빠져 있었는데 너무 많이 연구가 돼 있어서 더 이상 할 게 많지 않아 보였다. 눈을 돌리다 보니 양자역학이 눈에 띄었다. ‘정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인데, 이걸 눈에 보이는 자연과학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최근 국내에서는 의대 쏠림 현상이 문제다. 의대 진학을 고려해보진 않았는지.
“나는 의대가 조금 재미없게 느껴졌다. 계속 탐구하고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다. 다행히 부모님도 ‘의대에 진학하라’는 압박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미국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도 의사가 과학자보다 연봉이 높기 때문에 의대 진학을 바라는 부모님이 많다. 다만 사회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미국은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안정된 삶, 경제적 소득도 중요하지만 적성이나 재미, 성취감도 동등한 가치로 본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가치에 대해 고민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
“꽤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는데 너무 아쉬웠다. 5학년까지는 꽤 인기도 있고 친한 친구도 많았는데 전학을 가면 아는 친구 하나 없으니까. 그래서 전학을 가자마자 전교 회장 선거를 나갔다. 전교생이 700명이었는데 23표를 받고 떨어졌다. 무모했지만 그 덕분에 반에서 반장도 하고, 친구도 빨리 사귈 수 있었다.
이런 성격이 연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물리학자라고 하면 혼자 책상 앞에 앉아 고민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많은 토론과 의견 교환이 이뤄진다. 특히 양자처럼 광범위한 연구 분야의 경우 협력이 더욱 중요하다.”
―대표 연구로 꼽히는 ‘시간 결정’ 연구도 최준희 스탠퍼드대 교수와 공동 연구를 했다.
“하버드 박사 과정 시절에 함께 공부했던 최 교수와 함께 한 실험이다. 내가 이론을 담당하고 최 교수는 실험을 진행했다. 물리학은 대개 이론 중심의 물리학자와 실험 물리학자로 나뉘기 때문에 협업을 많이 한다.
시간 결정은 쉽게 말하면 ‘진자(振子)’다. 시간에 따라 여러 개의 입자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미시 세계인 양자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여러 입자가 움직인다는 것은 에너지가 매우 높은, 불안정한 상황이다. 양자역학에서 이런 입자들을 안정화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연구는 특정한 조건에서 시간 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당장 양자컴퓨터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구는 아니지만, 향후 양자를 제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론을 공부하는 물리학자지만 ‘응용’에도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저는 이론 물리학자치고는 굉장히 현실적인 편이다. 이런 성향이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으로 응용 가능성과 실용성이 큰 연구를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이론 물리학자지만 실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양자인공지능이나 양자센서 등에 관심이 많다.”
―양자인공지능으로 뭘 할 수 있나.
“양자인공지능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서 양자역학 연구를 촉진시키는 것과 반대로 양자를 이용해서 AI 계산을 더 빠르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연구는 후자에 가깝다. 기존의 AI로는 할 수 없었던 양자인공지능만이 할 수 있는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것이다. 가령 개와 고양이 사진을 AI가 구분하는 것처럼 특정 물질이 초전도체인지 아닌지 등을 양자 단위에서 구분해내는 것이다. 이런 게 구현된다면 최근 화제가 됐던 ‘LK-99’ 같은 신소재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게 되는 거다.”
―‘LK-99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현재로서는 상온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아 안타깝지만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실험 방식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른 과학자도 재현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한 것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이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또 이번 사태에서 과학계의 대가들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도 인상 깊었다. 만약 진짜라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연구이기 때문에 검증에 진지하게 임하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후발주자인 한국이 양자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안보다. 양자컴퓨터가 구현된다면 우리의 보안 시스템은 모두 붕괴된다. 만약 중국 정부가 양자컴퓨터 기술을 가지게 되면 미국의 모든 통신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미국이 양자 분야의 기술 우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는 배경이다. 우리나라도 1등은 아니더라도 뒤처지지 않게끔 지속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국제협력도 감안해야 한다. 양자 분야는 규모가 큰 연구가 많기 때문에 각자 하는 연구보다 국제협력이 중요하다. 한국이 국제협력 대상국이 되려면 빨리 기술적 차이를 좁히는 게 필요하다. 지금부터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에서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큰 틀에서 연구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미국도 연구비 경쟁이 매우 심하다. 노벨상 수상자라고 하더라도 연구비를 따내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다. 이런 경쟁 관계가 있어야 뛰어난 연구가 나온다.
다만 이제 막 과학계에 진입하는 젊은 연구자, 학생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미국의 경우 대학원생의 월급이 일반 회사원 월급과 큰 차이가 없다. 이번 연구비 삭감으로 박사후연구원과 같은 젊은 연구자들의 피해가 클 텐데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최순원 |
△1987년 대전 출생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물리학 학사 △2018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물리학 석·박사 △2018∼202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 박사후연구원 △2021년∼현재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조교수 |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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