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증명하지 못하는 증명사진[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이른바 아이돌 비즈니스에 정통한 사람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스타가 되는 과정에서 외모의 제약은 예전보다 덜하다고. 왜냐고? 성형 수술이 발달해서라고. 어지간한 외모는 거의 다 바꿀 수 있다고. 그러나 해가 지지 않는 대한민국 성형계도 어찌 못하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머리통 크기라고. 원하는 신체 비율을 위해서는 머리통이 보통 사람보다 작아야 하는데, 머리통을 줄일 방법은 없다고. 음, 그런가.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혁신을 거듭하는 법. 언젠가는 머리통 크기마저 줄일 방법이 개발될지 모른다. 혹은 영화 ‘겟 아웃’에 나온 것처럼, 다른 머리통을 갖다 꽂을 방법이 생겨날지 모른다.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이미지에 맞추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은 다시 그 이미지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예컨대 연예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원하고, 따라서 사진기 앞에서 지을 최적의 미소와 표정을 연습한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 누구도 인생의 무대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자기 침대가 무대일 뿐. 인생의 무대에 서는 한 누구나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고, 찍혀서 떠돌아 다닐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이 사진을 바꿀 뿐 아니라 사진도 인간을 바꾼다. 사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으면 짓지 않았을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이다.
“사진 잘 나왔어?” “응, 잘 나왔어.” 이와 같은 대화에서 “잘”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진상”을 그대로 담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진면모보다 더 잘생기게 찍혔다는 뜻일까. 아니면 특정 목적에 맞도록 찍혔다는 뜻일까. 사람들은 잘 나온 사진을 입사원서나 각종 지원서에 첨부한다. 그러나 그 첨부된 증명사진이 과연 그 사람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결국 증명사진이란 보이는 사람과 보는 사람 간의 복잡한 게임이다. 최대한 잘 보이려고 꾸미려는 노력, 그 노력의 흔적 속에서 뭔가를 파악해내려는 복잡한 동학. 그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뭔지 모를 진상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사진 보정 능력, 성형할 수 있는 재원, 화장술, 연출력 등등이 아닐까.
그리하여 오늘날 증명사진은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기념비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증명사진만큼 증명에 실패하는 사진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진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흐름을 순간으로 만들며, 3차원을 2차원으로 단순화해버리니까. 아니,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평론가 수전 손태그는 일찍이 스틸 사진은 결코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생에서는 매 순간이 그토록 중요하지도 않고, 멈춰 서 있지도 않고, 반짝반짝하지도 않는다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육해공 대장 7명 17개월만에 다시 전원 교체…軍기강잡기 메시지
- 추모식 참석 인요한에 일부, 욕설-야유…尹, 교회서 이태원 희생자 추도
- 北어선 구조요청에 NLL 넘어가 생수-컵밥 건넨 해군
- 민생 내세운 정부의 물가대책은 두더지잡기? “물가 도미노 막아야”[세종팀의 정책워치]
- 당신의 혈압은 안전한가요
- 네타냐후 “전쟁 2단계 돌입” 이軍 “지상군 가자 주둔”…사실상 전면전 시작
- 인요한, 영남 중진에 ‘험지출마’ 연일 요구…갑론을박 거세져
- 美플로리다 핼러윈 축제 기간 총격으로 최소 2명 사망·18명 부상
- 원희룡 “尹대통령이 사우디와 국내 기업 ‘데이팅앱’ 역할”
- 핼러윈 인파 이태원엔 한산…대신 홍대-강남역 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