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만 이용된 이태원 참사… 관련 법안 처리는 뒷전
참사 직후 16건 경쟁하듯 발의했지만
정치공방 이어가며 입법은 ‘허송세월’
與 “지지부진한 부끄러운 현실 반성”
野 “당정 마음만 먹으면 합의처리 가능”
韓총리 “안전대책 철저히 점검할 것”
10·29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맞았지만 참사 재발을 막을 관련 법안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참사 이후 여야가 책임 소재를 두고 정치적 공방을 이어가면서 입법이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안전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재난안전법은 지난달 20일에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28일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과 국정조사 추진 등을 놓고 여야가 정쟁을 거듭하며 허송세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장 경찰의 안전 매뉴얼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재난의료지원팀(DMAT) 구성·운영 근거를 마련하고,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처치 및 의료행위에 대한 업무상 과실을 감면해 주는 내용 등을 담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유감스럽게도 지난해 12월 제출한 재난안전법은 지난달에야 국회 행안위를 통과했고 다른 안전 관련 법안들도 상임위에 계류돼 발이 묶인 상황”이라면서 “1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부끄러운 현실 앞에 국민의힘이 먼저 반성하겠다.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與 “재난안전법 통과 우선”… 野 “참사규명 ‘특별법’부터”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특별법은 정부·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합의 처리할 수 있다”며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당의 혁신을 위해 이 문제를 함께 처리하자고 김기현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을 설득하고 함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대 협의회에서 재난안전법 개정안 등 핵심 입법과제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또 당정대는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마련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 대책의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재난 대응체계 관련 추가 대책 마련을 논의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고위 당정협의회 참석자들은 이날 모두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협의회 시작 전 묵념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다시는 발생해선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데이터에 기반한 위험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고 주최자 없는 행사에도 대비하는 등 국민 안전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더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철저히 안전 대책을 점검하고 관련 입법도 차질 없이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도 “안타까운 참사의 사전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 또한 오늘 당정협의회의 핵심 과제”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더 긴밀히 협의해나가겠다”고 했다. 윤 원내대표는 “우리 사회 안전 시스템이나 방재 시스템에 허점이 많다는 것도 확인됐고, 새로운 유형의 재난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국가 안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오늘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보완함으로써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할 대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비서실장은 “정부가 그동안 참사 원인 파악과 방지 대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국민은 아직도 대형 참사에 대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또 그는 “대통령께서도 누누이 강조했지만, 국민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안전 대책에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세심한 논의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유지혜·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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