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함에 끌린다 나·쁜·놈·들 전성시대

이복진 2023. 10. 2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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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확산따라 시청자 취향도 세분화
악인 주인공인 ‘피카레스크' 작품 늘어
범죄 응징하는 살인자·조폭닮은 경찰 등
다양한 ‘빌런'들 서사 이끌어 인기몰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각종 불법과 악행을 저지르며 주인공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인 악역(빌런)은 등장인물 간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이야기 전개를 이끌고 주인공을 돋보이게 한다. 주인공 못지않게 악역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악역을 맡은 배우가 어떤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 작품 인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는 물론 연애·사랑 얘기를 다룬 작품 등 장르를 막론하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 안방극장을 보면 ‘악인 전성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한 악인이 나온다. 그중에는 나쁜 짓을 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거나 심지어 응원하면서 보는 인물도 있다.

SBS에서 매주 목요일 방송하는 드라마 ‘국민사형투표’는 악질범들을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를 진행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정체 미상 ‘개탈’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개탈은 온갖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 인물로, 즉 악역이다. 탄탄한 서사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었던 ENA ‘유괴의 날’에도 주인공 김명준(윤계상)의 전처로 최진태(전광진) 원장을 살해한 서혜은(김신록)이 악역으로 나온다.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시리즈 ‘최악의 악’에서는 누가 더 악당인지 구분하기 명확하지 않다. 드라마는 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인 강남연합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잠입한 경찰 박준모(지창욱)와 강남연합의 두목 정기철(위하준)을 비롯해 박준모의 아내이자 정기철의 첫사랑인 유의정(임세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강남연합 두목인 정기철이 악당인 건 맞지만 경찰인 박준모도 살인을 하고 폭력을 일삼으면서 악행을 저지른다.
SBS 금토 드라마 ‘7인의 탈출’은 등장인물 모두가 악역이다. ‘막장 드라마’의 대가인 김순옥 작가가 글을 쓴 드라마로, 한 소녀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생존 투쟁과 그들을 향한 피의 응징을 다룬다.

지니 TV 오리지널 시리즈 ‘악인전기’는 생계형 변호사 한동수(신하균)가 폭력조직 ‘유성파’ 2인자인 서도영(김영광)을 만나면서 엘리트 악인으로 변모하는 이야기다. 당연히 악역은 서도영이지만, 한동수도 악인이 돼 간다.

티빙의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에도 악역이 빠지지 않는다. 동명의 네이버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평범한 택시 기사 오택(이성민)이 고액을 제시하는 목포행 손님(유연석)을 태우고 가다 그가 연쇄살인마임을 깨닫게 되면서 공포의 주행을 하는 이야기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돼 일부 공개됐으며, 당시 관객들은 이성민의 소시민 연기와 유연석의 악인 연기를 극찬했다. 티빙에서 다음달 24일 총 10화 중 6화까지 한 번에 공개된다. tvN에서도 20일부터 월화 드라마로 방송된다.
이처럼 최근 TV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서 악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플랫폼의 다양화에 따른 ‘새로운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티빙 관계자는 “콘텐츠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이용자들의 취향도 세분화됨에 따라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피카레스크(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도 점차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라며 “같은 피카레스크 장르라도 캐릭터 특성이나 주변 인물과의 관계성, 서사에 의해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하는 만큼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들도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tvN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에서 최종 악인 필광을 연기했던 강기영은 “(악역은) 궁금하던 부분이었는데 연기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며 “다양한 표현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최악의악’에서 정기철을 연기한 위하준도 “조금 더 자유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며 “(악역은) 일상적인 느낌도 아니었다”고 색다른 경험을 언급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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