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가는 곳, 두 바퀴로도 갈 수 있어야죠
이동 약자들에 제약 없는 여행지
국내 39곳 소개하는 안내서 출간
“한국은 무장애 여행 시작 단계”
주변에서 민원 제기 함께해주길
“관광 선진국들은 무장애 여행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1990년대부터 이뤄냈습니다. 한국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죠.”
전동 휠체어를 탄 여행작가 전윤선씨(56)는 지난 20일 한국의 무장애 여행 실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장애 여행은 장애인이나 영·유아 가족, 노령자 등 여행 약자들도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여행을 뜻한다.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유럽 여러 나라들은 오래된 건물에도 휠체어가 들어갈 경사로가 다 갖춰져 있다. 여행안내 책자에는 장애인의 출입 가능 여부가 표시돼 있다”며 “한국에는 예산이 없다며 장애인을 위한 안내 책자조차 없는 관광지도 있다”고 했다.
전씨는 최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여행안내서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를 펴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열차와 장애인 콜택시 등을 타고 찾아가 둘러볼 수 있는 국내 무장애 여행지 39곳을 소개했다.
“무장애 여행 정보가 인터넷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석구석 흩어져 있어서 찾기 쉽지 않거든요. 또 2014년 관광진흥법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여행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조항(47조의4)이 신설된 뒤에야 무장애 여행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갔습니다.”
전씨가 국내에서 가장 장애인 친화적 여행지로 꼽는 곳은 서울 중구 정동길이다. 덕수궁과 옛 주한 러시아 공사관 등 역사적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주변 건물에 많기 때문이다.
전씨처럼 이동에 제약이 많은 장애인들은 여행 갈 때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30대 초반부터 온몸의 근육이 점차 없어지는 희소병 근위영양증을 앓은 뒤 전동 휠체어를 타 온 전씨에게는 휠체어 충전기와 길이 3m가 넘는 멀티탭,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핸드폰을 충전하기 위한 보조 배터리가 필수다.
장애인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일 뿐 아니라, 장애인의 생각과 삶을 바꾸기 때문이라고 전씨는 말한다. 전씨는 “여행은 새로운 자극을 주고, 생각을 확장시킨다”고 말했다.
전씨가 30대 때 근육병 발병 후 ‘생애 마지막 소원’이라며 떠난 인도 여행은 역설적으로 그가 여행 작가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전씨는 “40대 중반 나이에 근육병을 앓았던 분과 2박3일간 동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그분이 ‘여행 후 삶을 마감하려고 했는데, 휠체어 타고 여행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삶의 끈을 잡아야겠다’고 하더라”며 “그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씨는 아직 국내 무장애 여행은 여건이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축구장 여행 상품까지 세분됐을 정도로 무장애 여행이 발달해 있다”며 “독일·일본의 무장애 여행을 100점 만점으로 보면 한국의 무장애 여행 수준은 아직 20점”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올해 봄에 마라도와 가파도를 가려고 했지만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배에 맞는 접안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진정을 제기했지만 아직 조사 중이라는 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더 많은 이들이 무장애 여행 여건에 관심을 보이고 행동해야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휠체어 때문에 일행과 케이블카 등 이동 수단 등을 이용하지 못할 때 ‘나 때문에 못 타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곤 한다”며 “주변에서 ‘외국에서는 탈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못 타나요’라고 문제를 환기하고 민원을 제기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문제의식이 쌓이면 변화한다”고 했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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