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역량 키워야…‘속 빈’ 재난문자 근절”
구체적 재난 상황 파악 한계
정부 “승진 우대”로는 미흡
인력 충원·면책 특권 등 필요
“우리 지역에 호우주의보 발효 중입니다. 하천 산책로·등산로 등 위험지역 접근을 자제하시고 기상상황을 예의주시,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7월 집중호우 당시 한 기초단체가 발송한 재난문자이다. 해당 지역의 한 하천변 도로는 30m 이상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위험지역’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담겨 있지 않았다. 결국 노부부가 차를 타고 해당 도로를 지나다가 변을 당했다.
최근 물폭탄·대형산불·폭염이 반복되고,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재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가운데 재난문자 이용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문자는 시민들에게 ‘공공 스팸’이나 ‘차단 대상’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재난 대응 기관의 역량을 강화해 재난문자를 내실화·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현재 이동통신사들에 재난문자 송출을 요청하는 시스템은 행정안전부에 있다. 그러나 행안부만 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상 ‘재난관리책임기관’으로 지정된 22개 중앙부처, 필요성이 인정된 공공기관, 전국 시·도 교육청, 자치단체들도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기관별로 발송 유형이 다르다. 자주 발송되는 기상 관련 문자의 경우 기상 특보나 재난 경보 발령 사실에 관한 문자는 행안부가, 침수 우려 지역 등 지역 내의 구체적 피해 위험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문자를 발송한다.
행안부가 보내는 특보 발령에 관한 문자는 행안부 예규에 ‘언제 발송해야 하는지’가 규정돼 있다. 그 외의 문자들은 발송 요청 기관의 재량이다. 지역이나 현장의 상황에 맡게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문자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예규에 문자별 표준문안이 제시돼 있지만 기관별로 상황에 맞게 문구를 작성할 수 있다.
지자체의 경우 행안부와 동등한 송출 권한을 갖는다. 재난의 1차 대응 기관인 지자체의 성격을 고려해 2019년 송출 요청권뿐만 아니라 자체 승인권한까지 부여됐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은 문자는 각 자치단체의 역량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상당수 자치단체는 인력·예산 등의 한계로 재난문자에 실질적인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 한 기초단체 담당자는 “담당 인력 4명으로 비나 눈, 태풍이 올 때마다 지역 내의 모든 강과 다리, 저지대, 노후주택, 산사태 위험지역, 공사장 등을 다 돌아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재난담당 공무원의 월평균 초과 근무시간은 45시간으로 전체 소속 공무원(31시간)에 비해 1.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중호우가 빈번한 7·8월의 경우 50시간에 달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상시 재난안전상황실 운영체계를 구축한 시·도는 84곳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도시 위주였다.
문제는 지자체 스스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지자체의 인건비 총액(기준 인건비)은 행안부가 정한다. 지자체 마음대로 인력을 늘리기 어렵다. 한정된 인력은 자치행정과 민원 대응 분야 등에 우선 배치된다. 재난 분야는 뒷전으로 밀린다.
행안부는 오송 참사를 계기로 재난담당 공무원에 승진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부서 간 인력 재배치를 독려해 재난부서 인력 증원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 기초단체 담당자는 “부서 재배치를 해봐야 1~2명 정도 늘어나는 수준”이라며 “재난 공무원의 경우 기준 인건비 적용을 배제하고, 재난 관련 과잉 대응을 하더라도 면책특권을 보장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치단체들이 ‘1차 재난 대응 기관’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재난 초동대처는 지자체가 할 수밖에 없어 재난문자에 관한 재량도 지자체에 주어져야 한다”면서 “읍·면·동 사무소와 이장·통장·반장 등 주민자치조직을 주민 보호를 위한 네트워크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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