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추모대회 "1년 지난 지금도 정부는 이 자리에 없다"
[현장]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 참가한 시민들
"마약수사·피해자탓…정부책임 흐리는 보도에도 분노"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유가족과 시민들이 모인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모두 불참한 가운데 대회에 참석한 시민들과 유가족, 야당 대표들은 '참사 1년 뒤에도 국가는 부재하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은 참사에 대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과 진상조사를 골자로 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29일 오후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를 개최했다. 추모대회 이름은 '기억, 추모, 진실을 향한 다짐'이었다. 유가족들은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서울광장 분향소로 행진해 오후 5시 대회가 시작했다.
광장 입구는 5시 본대회 전부터 추모를 위해 대회를 찾은 인파로 붐볐다. 시민들은 광화문 방향 입구에서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에 서명하고, 담벼락에 애도의 메시지를 붙였다. 바로 옆엔 시민분향소에 분향을 하려는 사람들로 줄이 늘어섰다. '촛불지킴이'라 쓰인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활동가들이 유입되는 사람들에게 들고나는 통로를 안내했다.
김하연씨는 참사 직후부터 '각성'을 하고 자원활동을 시작했다며 “당장 내일 내 가족이 이런 일을 당해도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들었다. 무엇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국민을 '개, 돼지'로 본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론이 정부의 잘못된 발표를 받아쓴 보도를 보면서도 화가 났다”고 말했다.
추모제 찾은 시민들 “진실과 동떨어진 보도에도 분노”
시민들은 '정부가 참사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화나서', '나의 일 같아서' 등 이유로 추모대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추모대회 참석을 거부한 데에 입모아 비판했다.
대회 장소를 지나다가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고 밝힌 A씨는 “무엇보다 100명 넘는 사람이 죽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와야 했다”며 “정치적 문제는 (정치권에서) 알아서 하더라도 대통령은 한 나라의 부모 아닌가. 그냥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니 다 내려놓고 스스로 와봐야 했다”라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추모대회를 찾은 간호조무사 임정은씨(민주노총 조합원)는 “청년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 일하다가도 죽고, 살아가다가도 죽는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는 문화를 즐기다가도 죽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지 않나”라며 “우연한 사고라도 재발을 막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국가 책임인 참사에서 (정부가)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데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임씨의 동료 B씨도 “여기까지 온 덴 분노가 가장 컸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래서 다 모였다고 생각한다”며 “참사 때도 큰 충격을 받았는데, 1년이 지나도 처벌 받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책임을 흐리거나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참사에 대한 책임을 흐렸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임씨는 “(이태원 참사 보도는) 유가족을 탓하고, '놀러갔다 죽었다'고 말하는 언론사와 그러지 않는 언론사로 갈렸다. (피해자 탓하는) 프레임을 씌우는 데 앞장서는 언론사들이 있었다”며 “문제는 (독자들이) 그런 언론 보도에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나”고 되물었다.
친구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C씨는 “친구들이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다. 친구에게 현장 사진을 카카오톡(SNS)으로 받아보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경찰의 인파 통제가 없었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이어 “언론이 (참사 원인으로) 시민의식 부족을 말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특히 참사 초기 '마약 수사'를 강조하는 보도를 많이 봤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는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피켓을 들고 여기 서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 이정민씨 “윤 대통령, 정부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추모대회가 시작한 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이주영씨 아버지)은 여는 발언에서 “당연하다 믿었던 일상의 안전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 이 참사를 기억해달라”며 “그 기억이 모여 커진다면 다시는 대한민국의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고 더 이상의 유가족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향해 “가족을 잃은 슬픈 마음과 고통의 순간을 위로받으며, 1년 전 악몽 같은 시간을 돌아보며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을 추모하는 이 시간은 결고 정치집회가 아니다”라며 “이태원 참사로 생을 달리한 159명의 희생자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하늘의 별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시는가? 혹시 정부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답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제 특별법만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원인과 재발방지를 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법안이다. 참사 앞에는 여야가 없다. 특별법 통과에 힘을 써 달라”고 했다. 그는 “여러분들, 대한민국의 모든 분들은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임현주씨는 희생자인 딸 고 김의진씨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며 “진실을 알고자 부단히 노력하다 당시 현장영상물을 통해 참사가 발생한 지 1시간30분 뒤 외국인의 CPR을 받는 축 늘어진 너를 찾고, 2시간 뒤 영상에선 1번출구 차디찬 보도블럭 위에 망자로 분류돼 뉘이는 영상을 찾았을 때 엄마는 분노하며 절규할 수밖에 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사회적 참사 앞에 누구 하나 진실을 밝힌다거나 책임 진다거나,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 대표들 특별법 제정 약속, 윤 대통령 불참엔
“정부, 야당이 주도한다고 외면? 여당이 주도하라”
이어 정당 대표들의 추도사가 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대표가 발언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추도사를 하지 않았다. 주무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는 오늘 이 자리조차 끝끝내 외면했다. 국가는 참사 때도, 지금도 희생자와 유족들 곁에 없다”고 비판한 뒤 “10.29 이후의 대한민국은 10.29 이전의 대한민국과 달라야 한다”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신속한 통과로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발언에 가장 큰 박수를 보냈다. 용혜인 대표는 “참사가 아니라고 사고라고, 희생자가 아니라고 사망자라고 바꾸라고 결정했던 중대본의 책임자인 한덕수 국무총리, 참사에 대해 농담을 해대는 그런 사람이 아직도 국무총리일 줄 몰랐다. 가장 먼저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했어야 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은 책임자 경질한다고 막을 수 없다'며 뻔뻔스럽게 직을 유지할 줄 몰랐다”고 했다.
용 대표는 “지금 이 순간까지 끝끝내 윤석열 대통령의 자리는 비어있다”고 비판한 뒤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 반드시 제정하겠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이 사죄의 마음을 담아 앉아있어야 할 저 빈 의자가 너무나 시리다”며 “유가족의 외침에 이미 전부 규명했다는 궤변으로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는 정부를 반드시 심판하겠다. '10.29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가 “윤 대통령이 야당이 주도하는 행사라며 1주기 추모제 자리조차 외면했다. 그러면 여당이 주도하면 되는거 아닙니까”라고 발언하자 유가족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부가 끝난 뒤 자리를 떴다. 인 혁신위원장이 보좌진 경호를 받으며 자리를 뜨자 시민 인파가 그를 따라가 '해체하라' '참사 책임 져라' 등 소리를 치기도 했다.
김종기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김수진양 아버지)도 추도사를 했다. 김종기 위원장은 “이곳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를 했다. 그리고 지금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제를 하고 있다”며 “차마 안녕하십니까, 힘내시라는 말조차 하기 어렵다. 지난 1년이 너무나 힘든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 이후 길도 그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다시는 국민이 희생자가 되고 유가족이 되면 안 된다. 책임자 문책해 안전사회로 바꾸자고 외치는 많은 시민들이 있다. 지금 가는 길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늘에서 지켜볼 별들을 보며 힘내자”고 했다.
대회에는 외교 사절로 외국인 희생자 가운데 가장 많은 5명이 희생된 이란의 사이드 쿠제치 대사와 4명이 희생된 러사이 올가 아파나시에바 주한 러시아대사관 영사가 참석했다. 4.16 합창단과 한영애 밴드, 웨슬리 꽃재 오케스트라, 가수 한선희씨와 유주현씨의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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